[이슈추적]여권이 한명숙 ‘손절’ 못 하는 이유
상태바
[이슈추적]여권이 한명숙 ‘손절’ 못 하는 이유
  • 김태훈 기자
  • 승인 2021.03.29 00: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23일 오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열린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1주기 추도식에서 헌화하고 있다. (노무현재단 제공)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23일 오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열린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1주기 추도식에서 헌화하고 있다. (노무현재단 제공)

여권이 ‘한명숙 살리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 3월 19일 검찰이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 대한 ‘모해위증교사 의혹’을 무혐의 처리했음에도 여권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여권이 한 전 총리의 명예회복에 나서는 배경은 무엇일까.

◇‘여성운동 대모’ 구명운동인가?

한 전 총리를 살리려는 여권의 움직임에 대해 일각에선 진보 여성운동계 인사가 다수 포진한 여당 내 한 전 총리의 상징적 위상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화여대를 졸업한 한 전 총리는 1979년 ‘크리스천 아카데미 사건’에 연루돼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대학에서 여성학을 강의하다 1980년대 후반 여성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한국여성단체연합(여연) 공동대표, 한국여성민우회 회장을 역임했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 처벌법) 제정에 앞장섰다.

여성운동을 함께한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고(故) 이희호 여사와 연으로 정치권에도 안착했다. 2000년 새천년민주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됐고 이듬해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신설한 여성부 초대 장관을 지냈다. 노무현 정부 들어선 환경부 장관과 국무총리를 지냈다. 

이영희(필명 ‘오세라비’) 미래대안행동 여성위원장은 “한 전 총리는 진보 여성운동 진영의 적자(嫡子)이자 ‘넘사벽’급 투사였다”고 회고했다. 

이영희 위원장은 “한 전 총리가 관여한 여연 등 여성단체는 여성운동 주류가 됐다. 동료·후배 여성운동가도 여럿 정치권에 진출했다. 끈끈한 자매애로 엮인 이들이 한 전 총리를 ‘손절’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싶다”고 주장했다. 1987년 21개 진보 여성단체가 모여 조직한 여연은 국내 대표 여성단체로 자리매김했다.

여연에서 활동한 권미혁(20대), 김희선(16·17대), 남인순(19~21대), 박선숙(18·20대), 이미경(15~19대), 정춘숙(20·21대) 씨 등이 의원을 지내거나 현역의원이다. 지은희 전 여성부 장관, 정현백 전 여성가족부 장관도 여연 출신이다. 

다만 한 전 총리의 비위만으로 여성운동 전체를 비난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 많다. 앞서의 여성계 인사는 “한 전 총리가 여성운동 출신 정치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여성운동 진영이 과도한 비난을 받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 ‘윤석열 사단' 무력화, 조국·백원우 등 구하기?

작년 5월 진보 매체 ‘뉴스타파’는 고(故) 한만호 한신건영 대표의 옥중 비망록을 근거로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뇌물수수 사건이 검찰의 조작일 개연성이 높다는 일련의 보도를 내놨다. 뉴스타파는 “윤석열 검찰총장을 필두로 한 검찰 특수부 라인 검사들이 다 연관됐던, 담당이 됐던 사건”이라고 언급했다. 

이 내용을 받아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는 그해 5월 2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재조사를 공론화했다. “이 모든 정황은 한 전 총리가 검찰의 강압수사, 사법농단의 피해자임을 가리킨다. (중략) 한 전 총리는 2년간 옥고를 치르고 지금도 고통받는데, 넘어가면 안 되고 그럴 수도 없다. (중략) 법무부와 검찰은 부처와 기관의 명예를, 법원은 사법부의 명예를 걸고 스스로 진실을 밝히는 일에 즉시 착수하길 바란다.” 

민주당 박주민 최고위원은 다음 날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설치된다면 법적으로 수사 범위에 들어가는 건 맞다”며 이 사건을 아예 공수처 수사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한 발 더 나아갔다. 공수처가 만들어지면 한 전 총리 사건을 수사한 검사들을 기소해 처벌할 분위기였다. 

이들의 목표는 윤 검찰총장을 공수처 1호 수사 대상으로 삼고, 그 연장선에서 검찰 특수부 라인, 윤석열 사단을 완전히 정리하는 일이다. 김태년 원내대표가 한 전 총리 사건 재조사 필요성을 제기한 5월 2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재조사 필요성에 공감을 표했다. “검찰개혁이 반드시 이뤄져야 하고, 제도 개선을 위해서도 구체적이고 정밀한 조사 필요가 있다는 점을 충분히 공감한다.”  

법무부 법무·검찰개혁위원회가 5월 18일 공개한 ‘검찰권의 공정한 행사를 위한 검사 인사제도 개혁’ 권고안에 따르면 검사장·지청장은 형사·공판부 경력검사로 5분의 3 이상 임용해야 한다. 윤석열 사단, 곧 특수부 출신 검사를 추가 정리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한 전 총리 사건을 재조사한 뒤 당시 수사의 부당성을 근거로 재심해 무죄로 만든다. 아울러 윤석열 사단이 무리하게 수사한 또 다른 희생양인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건도 무죄로 결론 나게 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송철호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으로 줄줄이 기소된 백원우 등 청와대 전직 비서진과 기소 위기에 처한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도 무죄로 결론 나게 한다. 최강욱 대표도 조 전 장관 아들의 허위 인턴증명서 발급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설령 이들이 실형을 선고받더라도 문재인 대통령 퇴임 전 특별사면된다. 이는 문 대통령의 탄핵 가능성을 낮추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임 전 비서실장이 기소되면 문 대통령도 형사 처벌 위기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부채 의식

한 전 총리에 대한 부채 의식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한 전 총리는 한때 ‘친노(친노무현)의 대모’로 불렸다. 2012년 총선 때는 당대표로서 친노계의 정계 진출을 적극 후원했다.

김태년 원내대표 역시 그때 신세 진 바가 있다. 당시 한 전 총리는 김 원내대표가 출마한 경기 성남시 수정구에서 야권후보 단일화를 성사시켰고, 이정희 당시 통합진보당 대표와 총력 유세지원까지 했다. 2012년 총선에서 당선한 민주당 초선의원은 56명, 전체의 44%였다. 이들은 당시 ‘한명숙 키즈’로 불렸다. 문 대통령도 그 가운데 한 명이었다. 

한 전 총리에 대한 대법원 유죄 판결이 나온 직후 당시 새정치민주연합(현 민주당) 문재인 대표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사건 판결을 보면 검찰의 정치화에 이어 법원까지 정치화됐다고 우려한다. (중략) 사법부만큼은 정의와 인권을 지켜주는 마지막 보루가 돼주기를 기대했지만, 오늘 그 기대가 무너졌다. 참으로 참담한 심정이다.” “우리는 한 총리가 역사와 양심의 법정에서 무죄임을 확신한다.” 

그동안 이 생각에 변화가 없었다면 문 대통령은 여전히 한 전 총리가 무죄라고 확신하고 있을 테다. 재심으로 무죄 판결을 받기 어렵다면, 그보다 못한 대통령 특별사면을 택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올해 초 신년 특별사면이 이뤄질 즈음 한 전 총리에 대한 특별사면 얘기가 나온 적이 있지만 성사되지는 않았다.

일각에서는 특별사면보다 재조사와 공수처 수사, 재심, 그리고 무죄로 이어지는 과정이 더 좋은 선택지라는 분석도 한다.

김태훈 기자 thk@koreareport.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