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민 비서실장 "문대통령, 박범계 장관에 그런 의미로 말해"…김태년 "정확한 워딩 아냐" 제지
당에선 "속도조절은 개혁포기""1년 남은 靑과 黨 입장 다를 수도" 강경…결국 '대통령이 정리해야' 지적

검찰개혁의 '마무리'로 간주되는 검찰의 수사·기소권 완전 분리를 놓고 예정대로 이를 서두르려는 여당과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청와대가 충돌 조짐을 보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참모진의 수장인 유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이 문 대통령의 '속도조절 당부가 있었다'고 확인하자, 오히려 당 지도부가 이 같은 언급을 부정확한 것으로 정정하는 일이 벌어지면서다. 

청와대의 기류와는 달리 검찰개혁 강경파를 중심으로 당내에선 상반기 내 중대범죄수사청(수사청) 설립 법안 처리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는 상황이어서 당청간 이상기류가 갈등으로 증폭될지 주목된다. 

결국 추가 검찰개혁의 폭과 강도를 놓고 대통령이 당 지도부과의 협의를 거쳐 분명한 입장을 정리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유영민 비서실장은 24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박범계 법무부 장관의 언급으로 촉발된 문재인 대통령의 '검찰개혁 속도조절론'을 묻는 곽상도 국민의힘 의원 질문에 "속도조절을 말씀하시냐"라고 반문한 뒤 "박범계 장관이 임명(장을) 받으러 온 날 속도조절을 당부했다"고 말했다.

유 비서실장은 곽 의원이 '박 장관이 오늘 문 대통령의 속도조절 언급을 부인했다'고 지적하자 "그건 제가 보도를 확인 못했지만, 팩트는 임명장 주는 날 대통령께서 차 한잔 하면서 당부할 때 그때 이야기가 나온 사안"이라고 거듭 확인했다.

2단계 검찰개혁 속도조절 논란이 벌어지자 당에서 이날 '2월말~3월초 법안 발의 후 상반기 내 입법' 계획을 거듭 확인하는 등 이를 수습하는 과정이었는데, 다시 대통령의 '속도조절 당부'가 비서실장 입을 통해서 확인된 것이다. 

앞서 지난 22일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박 장관은 수사청과 관련해 수사권 조정을 안착시키는 게 중요하다는 취지의 문 대통령 발언을 전했고 이는 수사청 설립에 속도조절을 주문한 것으로 해석됐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국회운영위원장인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나서 "제가 들은 바가 있는데, 대통령께서 '속도조절하라'고 말씀하신 건 아니지 않느냐. 오해가 있을까봐"라고 유 비서실장에게 답변을 요구했다. 

김 원내대표는 "박 장관이 (문 대통령으로부터) 어떻게 지침을 받았는지는 국회에 출석해 발언했는데 지금 유 비서실장이 속도조절이라고 했냐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변하면 (문 대통령이) 워딩을 그렇게 쓴 게 되지 않나"라고 지적했다.

이에 유 비서실장은 "제가 그 자리에 있었는데 다시 확인을 해보겠다. 정확한 워딩은 그게 아니었고 그런 의미로 표현하셨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후 국회운영위 말미에 다시 "속도조절이라는 표현은 없었다고 확인했다"고 정정했지만 "현재 검찰개혁과 권력기관 개혁안이 잘 안착되는 게 중요하다는 말씀을 하신 게 '속도조절'이라는 것으로 언론에 나왔다"며 여전히 앞서 박 장관과 비슷한 취지로 말했다. 

속도조절론의 출발점이었던 박 장관도 이날 "대통령께서 그런 표현(속도조절)을 쓰지 않았다"면서도 수사-기소 분리를 서두를 일은 아니라는 취지의 언급을 했다. 

박 장관은 "궁극적으로 수사와 기소는 전 세계적 추세를 보더라도 분리돼야 하는 것이 맞다"면서도 "반면 검찰이 그간 보여준 수사 역량과 자질 역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 비서실장과 박 장관의 이런 분위기와는 달리 당은 이날도 조속한 '검찰개혁 완수 의지'를 재확인하는 등 강경한 모습을 이어갔다. 

최인호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검찰개혁3법은 당 검찰개혁특위 차원에서 2월 말에서 3월 초 발의될 것"이라며 "상반기 중 국회에서 발의된 법을 처리한다는 방침도 확고하다"고 밝혔다.

검찰개혁특위 소속 김남국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만약 여기서 멈추면 대통령선거 등 정치 일정상 언제 다시 추진할 수 있을지 모른다"며 "속도조절론은 사실상 개혁 포기 선언"이라고 강조했다.

특위 소속 박주민 의원도 속도조절론에 대해 "그런 이야기를 들은 바 없다"고 했고, 황운하 의원 역시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수사청 설치를 좌초시키고 싶은 분들이 속도조절론이라고 포장하는 게 아닌가. 좀 왜곡해서 무리한 해석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추가 검찰개혁 추진 방향과 속도 등에서 당청간 이견이 본격화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정권마다 임기 마지막해 불거지기 마련인 당청 간 긴장 및 갈등관계가 이번에도 되풀이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없지 않다. 

정청래 의원은 이날 KBS에 출연해 청와대발 '속도조절론'에 대해 "국회가 해야 될 일을 뚜벅뚜벅 해야 된다"며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1년 남았고, 21대 국회는 임기가 1년 됐다. 마무리하는 청와대와 새롭게 일을 시작하는 국회의 입장은 좀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국회는 국회대로 지금 검찰 개혁 시즌2를 준비해야 되는 입장에서 중대범죄수사청이라든가 검사의 수사-기소 완전 분리라든가 이런 부분이 저희한테 과제가 있는 것"이라며 "마무리 시점과 시작하는 시점에 있는 사람들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2단계 검찰개혁을 둘러싼 당정청 간 이견을 조기에 봉합하기 위해 문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가 원활한 협의를 통해 수사청 설립 등 검찰개혁 마무리의 시기와 폭, 강도 등에 의견을 모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관련 최 수석대변인은 "청와대, 당, 정부는 검찰개혁 방향을 함께 공유하고 있다"면서 "당청 간에, 또는 당정 간에 이견이 있는 것처럼 알려지는 건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유 비서실장은 이날 "그 부분(검찰개혁)은 지금 민주당에서 충분히 속도조절을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thk@korea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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