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필요한 LG, 벼랑 끝 전술 SK…"급한 쪽이 진다"
바이든 대통령 거부권 행사 대신 '합의' 종용 가능성

LG, SK 본사 사옥 ⒸKR DB
LG, SK 본사 사옥 ⒸKR DB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11일(한국시간)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간 영업비밀침해 소송 최종결정에서 LG의 승소 판결을 내렸다. 2019년 4월 소송전이 시작된지 약 2년 만이다.

미국 관세법 337조 위반을 적용, 영업비밀을 침해한 SK이노베이션에 배터리와 배터리 셀, 모듈, 팩 등 부품에 대한 '미국 내수입 금지 10년'을 명령했다. 이미 수입된 영업비밀 침해 품목에 대해서도 미국 내 생산유통 및 판매를 금지하는 '영업비밀 침해 중지 10년 명령'을 내렸다.

다만 ITC는 SK가 미국에서 배터리를 공급할 포드, 폭스바겐에 대해서는 일정 기간 수입을 허용하는 유예 조치도 함께 내렸다. SK의 포드 전기차용 배터리 부품·소재 수입은 4년간, 폭스바겐 전기차용 수입은 2년간 허용된다. 이미 미국에서 판매 중인 기아 전기차용 배터리 수리·교체를 위한 전지 제품의 수입도 허용됐다.

◇ 합의 지연…SK이노베이션 노림수 있나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이 결판 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아직 양측은 협상을 이어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가장 중요한 '합의금 규모'를 두고 양측이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며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서다.

그동안 업계에선 SK이노베이션이 패소할 경우 미국에서 배터리 사업이 불가능하기에 판결 즉시 합의를 위한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란 예상이 우세했다. 사정이 급한 만큼 LG에너지솔루션이 요구하는 수준의 합의금을 맞춰줄 수도 있지 않겠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하지만 아직까지 드러난 모습은 이런 예상은 빗나가는 모양새다. 지난 11일 SK이노베이션은 패소 직후 "합리적 조건이라면 언제든 협상에 임할 것"이라며 원칙적으로는 합의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아직 남아있는 절차(대통령의 거부권 검토)로 해당 결정(패소)을 바로잡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다툼을 계속하겠다는 뜻에 방점이 찍힌 입장을 내놓았다.

이런 SK이노베이션의 입장은 배터리 화재 원인을 두고 현대자동차와 다툼을 벌이고 있는 LG에너지솔루션의 현재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란 해석이 많다. 그동안 현대차의 '코나 화재 사건'을 조사했던 국토교통부는 조만간 화재 원인을 발표할 예정이며, 현대차도 국내에서 판매한 코나 전기차를 리콜해 배터리를 전량 교체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조사 결과 화재 원인이 배터리 결함으로 밝혀진다면 LG에너지솔루션은 수조원에 달하는 충당금을 쌓아야 한다. 그게 아니라도 조만간 코나 전기차를 리콜하면 배터리를 새로 공급해야 하기에 1조원 이상으로 추산되는 비용을 분담해야 한다. 어느 쪽이든 LG에너지솔루션 입장에선 당장 막대한 비용 지출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특히 LG에너지솔루션은 조만간 기업공개(IPO)를 앞둔 만큼 흥행을 위해 재무구조 개선이 더욱 필요한데, 패소한 SK이노베이션으로부터 합의금을 받아내면 이를 충당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 때문에 패소했더라도 2~4년의 유예기간 동안 배터리 사업을 할 수 있는 SK가 아니라, 오히려 LG 측이 협상에 더욱 목을 매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경우 SK이노베이션은 LG에너지솔루션의 급한 상황을 이용해 합의금을 최대한 낮출 수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이 합의를 미루는 이유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꼽을 수 있다. SK 공장을 가동해 지역 경제를 살리려는 미국 조지아주(州)가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거부권을 쓰라'고 압박하는 점도 호재다. SK이노베이션이 1년 이상 걸리는 연방 항소법원 절차까지 밟을 수 있다며 공공연히 말하는 이유다.

다만 소송에서 패소한 만큼 SK이노베이션이 LG보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건 사실이다. 우선 바이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적다. 미국 정부 입장에선 해외 기업들의 다툼에서 한쪽 편만 들어주긴 어렵고, 지적재산권 침해에 대한 윤리적 잣대가 엄격한 사회 분위기를 고려하면 거부권 행사는 더욱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실제로 1916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설립된 이후 영업비밀 침해 사건에 대해 미국 대통령이 거부권을 쓴 사례는 아직 1건도 없다.

반면 바이든 대통령이 지역 경제 발전을 위해 실제 거부권은 행사하지 않으면서 LG측에 합의를 종용할 수도 있다. 이는 합의 과정에 SK이노베이션에 유리한 조건이 형성될 수 있다.

여기에 '변수'가 될 수 있는 게 문재인 대통령의 미국 방문이다. 아직 구체적인 일정은 나오지 않았지만 이달 초 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전화통화를 하면서 문 대통령의 방미 계획이 사실상 확정됐다. 문 대통령의 방미 전 국내 두 대기업이 합의할 가능성이 있고, 바이든 정부에서 합의 중재자로 나설 수도 있다.

어느 경우이든 '시간'은 SK이노베이션에 유리 할 수 있다. 이럴 경우 SK 측은 합의금을 줄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 합의 불발시 SK이노베이션 막대한 손해 

기존의 ITC 판결을 뒤집을 만한 새로운 증거를 내놓거나 상황이 급변하지 않는 이상 패소 결정은 그대로 이어지는 게 일반적이다. 여기서도 패소한다면 SK이노베이션은 LG에너지솔루션과의 협상에서 더욱 불리해진다.

특히 LG에너지솔루션과 끝내 합의하지 못한다면 SK이노베이션은 약 3조원을 투자한 미국 배터리 공장을 ITC가 정한 유예기간 1~2년만 가동하고 미국 사업을 접어야 한다. 한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지금 SK는 벼랑 끝 전술을 쓰고 있는 것"이라며 "물론 성공할 수도 있지만, 실패하면 벼랑 아래로 추락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협상이 늦어질 수록 SK이노베이션이 내야 할 합의금 규모가 더욱 커질 수 있어 손해라는 입장이다. 현재 LG 측은 약 2조~3조원을, SK 측은 수천억원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LG도 SK가 배터리 사업을 접는 걸 원하지 않고 SK도 현실적인 대안은 합의인 만큼 양사가 전격적으로 협상에 나설 수도 있다"며 "합의금 액수와 지급 방식 등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결국 합의 선택 여부는 SK에 달렸다. 순순히 LG측이 요구하는 합의금에 사인을 할 것인지, 아니면 바이든 대통령의 합의 종용 등 다른 변수를 기대하며 시간벌기를 하는 것이다. SK가 후자쪽을 택한 다면 '합의'의 결정권은 바이든 대통령에 달리게 된다. 

그가 전례에 따라 거부권을 행사를 거부할지, 아니면 지역 경제를 위해 거부권을 행사할 지 알 수 없다. 미국 정부와 재계에서는 그 중간 입장, 즉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으면서 합의를 종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상연 기자 lsy@koreareport.co.kr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코리아리포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