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운동 '큰 어른'…1987년 대선서 민중후보 출마
1992년 대선 후 통일운동 헌신…평생 고문 후유증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통일운동가이자 진보 진영의 원로인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 15일 투병 끝에 별세했다. 향년 89세이다.

1933년 황해도 은율군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0년대부터 농민·빈 민·통일·민주화운동에 매진하며 한국 사회운동 전반에 참여했다.

1960년대에는 4·19혁명에 뛰어들었고, 6.3세대와 연대해 1964년 굴욕적인 한일협정 반대투쟁을 전개했다. 박정희 유신독재를 종식시키기 위해 재야 연합전선의 하나로 윤보선, 함석헌, 장준하 선생과 함께 야권 통합운동을 성사시키기도 했다.특히 독립운동가이자 재야 정치인인 장준하 선생과는 백범사상연구소 설립과 민족학교 운동도 전개했다.

1970년대에는 민주수호청년협의회를 결성하는 등 전태일 분신과 광주 대단지 사건 등 민중들의 생존권 투쟁에 앞서다가 대통령 긴급조치 제1호 위반으로 장준하 선생과 함께 구속되기도 했다.

1980년대에도 재야인사들과 민주회복국민회의를 결성하고 백범사상연구소를 발전적으로 해체, '통일문제연구소'로 확대 설립했다. 1987년과 1992년에는 민중 대통령 후보로 추대 출마해 민중의 독자적인 정치 시대를 알렸다.

1990년대에는 민주노총 전신인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를 결성해 고문으로 추대됐고, 재야 전국연합을 창립했다. 또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범국민투쟁본부를 결성하는 등 노동운동과 통일운동을 병행하면서 사회 개혁에 나섰다.

2000년대 들어서도 비정규직·해고 노동자들의 전국 투쟁현장을 비롯해 이라크 파병 반대운동,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반대운동, 용산참사 투쟁, 밀양 송전탑 반대운동, 이명박 정권퇴진운동, 민중총궐기 등에 참여했다.

고인은 `장산곶매 이야기' 등 소설과 수필집을 낸 문필가이자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 원작자이기도 하다. `항일민족론'(1971), `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며'(1979), `백기완의 통일이야기'(2003),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2009), `두 어른'(2017) 등 평론·수필집을 비롯한 다수의 저작이 남겨졌다.

지난 2018년 4월 심혈관 질환으로 서울대병원에 긴급 입원해 12시간에 걸쳐 관상동맥우회술을 했던 고인은 2020년 9월부터 다시 폐렴 등으로 긴 투병생활에 들어갔다.

김성지 기자 ksjok@korea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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