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붕괴로 인한 체제붕괴 주장…北 경제 '맷집' 갖춰
'내부 혼란'으로 인한 붕괴 …쿠데타, 민중봉기 불가능
30년 넘게 때마다 등장… "실체 없는 허구, '보수' 대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5일 개최된 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MBC 캡처)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5일 개최된 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MBC 캡처)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인 빅터 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가가 ‘북한 붕괴론’을 거론해 논란이 되고 있다.

차 석좌는 지난달 16일 워싱턴포스트(WP) 기고문에서 북한의 국경봉쇄 상황이 향후 1년 이상 지속될 경우 정권이 흔들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북한이 방역을 명분으로 인적·물적 왕래를 사실상 중단해 경제적 타격을 받고 있는 만큼, 국경봉쇄가 장기화될 경우 '내구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차 석좌는 최악의 경우 김정은 위원장이 내부 동요에 휘말려 핵무기에 대한 통제권을 잃을 가능성이 있다고도 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코로나19, 핵무기, 붕괴하는 경제가 혼재한 재앙적인 상황을 맞고 있는 북한의 위기를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른바 북 붕괴론을 차 석좌가 다시 끄집어 낸 것이다.

국내외에서 ‘북한 붕괴론’이 나온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차 석좌가 최근 다시 수면위로 올려놓으면서 진위 여부와 함께 그에 따른 파장도 주목된다. 

◇시대마다 등장한 ‘북한 붕괴론’… 실체 없어

이른바 ‘북한 붕괴론’의 역사는 길다. 대표적으로 김일성 주석이 숨진 1994년 7월 8일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숨을 거둔 2011년 12월 17일 직후 가장 선명하게 기록돼 있다. ‘수령’의 죽음으로 북한 사회의 혼란은 불가피할 것이고 붕괴로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엄청난 내부 충격에도 불구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체제가 정비돼 있었고, 특히 노동당이 지도자의 부재라는 충격을 제어할 수 있었다.

한 때는 ‘김정은 위원장 제거’에 따른 붕괴론(Kill Change)까지 나왔지만 비현실적이라는 비판과 함께 사라졌다. 

그밖에 네오콘 등 미국의 대북 강경파들이 주도한 북한 붕괴론도 있었지만 허구로 드러났다. 

이번에 북한 붕괴 가능성을 거론한 차 석좌는 이전에도 제기한 바 있다. 그는 김정은 정권이 출범한 직후인 2012년 4월에 자유아시아방송(RFA)을 통해 “차기 (미국)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기 전에 북한은 내적 또는 외적 요인으로 인해 붕괴할 수 있고, 미국이 무시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20대의 젊고 경험 없는 김 위원장이 대남·대미 정책에서 무리수를 둬 무력 충돌로 이어질 수 있으며 내부적으로도 권력 장악에 실패하리라는 관측이었다.

차 석좌는 2013~2014년의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이 당장 내일 붕괴로 이어지는 건 아니지만, 그런 불안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혹은 "(김정은체제가) 지속될 수는 없다. (10년 내) 통일이 될 것"이라는 말도 했다. 

하지만 차 석좌를 비롯해 역대 전문가들의 북한 붕괴 전망과 분석은 모두 빗나갔다.

◇ 북한 경제 붕괴 가능성 …경제구조 '맷집' 가져, 붕괴 희박

차 석좌는 북한이 붕괴될 수 있는 가장 큰 원인으로 ‘경제난’을 꼽았다. 심각한 경제난을 북한 정권이 수습하지 못하면 내부 혼란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체제가 무너질 수 있다는 해석이다.

북한이 코로나19, 대북제재, 자연재해 등 ‘3중고’로 인해 경제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또한 북한을 지탱해온 중국과의 교역이 지난해 70% 이상 줄어든 데다 북한 내 민생경제를 이끌던 장마당과 밀무역도 국경 봉쇄로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수긍할 만하다.

하지만 현재의 경제난이 북한 경제가 붕괴될 만큼 악화된 것인지, 그 파장이 정치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는지도 불확실하다.

북한은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기’를 지나면서도 매년 경제난에 시달렸다. 그러나 그때마다 충분하지 않지만 ‘위기’를 극복했다.

한반도평화경제연구소 이민원 부소장은 “북한 경제난의 핵심은 식량난인데 매년 부족한 150만톤가량의 식량 중 상당 부분을 중국을 통해 해결한다”며 “북한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중국  랴오닝성(遼寧省)에서 극히 일부만 지원해도 북한에겐 충분하다”고 말했다. 

북한이 김정은 체제에서 정상국가로 이행하며 경제체제를 발전시키고 군사력 증진보다 경제력 향상에 비중을 둬온 점도 평가받고 있다. 

김상기 통일연구원 통일정책연구실장과 최은주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 연구위원은 북한이 ‘핵·경제 병진노선’(2013년 3월)을 채택하고 ‘사회주의 경제강국건설 총집중 노선’(2018년 4월)으로 전환하며 도입한 북한의 경제중심 정책이 북한 경제구조를 탄탄하게 구축했다고 봤다. 환율과 쌀·휘발유 등의 시장가격이 크게 불안정한 상황이 아니라는 점도 “북한이 생존을 위한 내부 조건을 개발”한 상태를 시사한다며 “북한 경제가 붕괴할 가능성은 거의 전무하다”고 했다.

유영구 북한연구자는 <김정은의 경제발전전략>이란 저서에서 김정은 체제에서 북한이 정상국가로의 이행과 함께 경제에 필요한 법과 제도를 개선해와 경제 기반이 튼실해졌다고 평가했다.

그는 “북한이 지난 1월에 열린 제8차 당대회에서는 '경제판' 인민대중제일주의를 본격적으로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며 경제전략에 의미를 부여했다. 

이는 북한이 핵과 미사일 등 자위적 군사력을 충분히 갖춘 상태에서 ‘경제’에 올인한다는 의미로 실제 북한은 사회주의경제체제로 나아갈 정도로 경제구조를 개선해왔다. 

차 석좌는 북한이 위태로운 북한 경제를 극복하기 위해 장마당(자연발생적 시장)으로 대변되는 시장 경제를 통제하고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외부의 적을 향한 군사적 행동을 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북한에서는 경제당국이 허용한 400개 이상의 종합시장과 기타 농민시장․장마당이 있는데 시장의 규모와 판매가능품목 등은 당국에 의해 자주 조정된다.

과거 북한의 장마당은 국가경제 바깥에 존재했지만 ‘김정은 시대’의 장마당은 국가 경제 구조의 일부가 됐다. 북한 주민들이 장마당 경제에 의해 삶을 연명한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고, 장마당이 과대평가된 것이다.  

따라서 차 석좌가 거론한 북한 경제 붕괴 가능성은 메우 희박하다.

빅터 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
빅터 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

◇ 내부 혼란으로 인한 체제 붕괴…현실성 없는 ‘비약’

차 석좌는 워싱턴포스트 기고글에서 “최악의 경우 내부 혼란으로 북한 정권이 핵무기에 대한 통제를 잃을 수도 있다”고 했다. 다시말헤 내분 혼란에 따른 체제 붕괴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차 석좌는 ‘내부 혼란’의 구체적 내용을 말하지 않았지만 북한 체제가 붕괴될 정도의 내부 혼란이라면 군사쿠데타나 민중 봉기 등을 가정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그런 조짐은 보이지 않고, 현실적으로도 발생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게 대다수 북한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한반도통합연구소 김상원 부소장은 “북한 체제는 다른 국가들과 달리 노동당이 국가 위에 존재하는 형태로 중국과 함께 유이한 체제이다”라며 “노동당이 군, 행정부 등 모든 기관과 조직을 지배하고 있어 북한 체제를 전복할 군사 쿠데타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김 부소장은 “특정 정치집단이나 군세력이 반란을 일으키더라도 노동당을 뛰어넘을 수 없고, 설령 성공하더라도 노동당은 존재하고 북한이 붕괴되는 일은 없다”고 덧붙였다.

김 부소장에 따르면 김일성·김정일 사후에도 북한이 온전할 수 있었던 것은 노동당의 힘 때문이고, 김정은 신변에 이상이 오더라도 노동당으로 인해 북한 체제는 지속된다.

차 석좌는 북한의 경제난(식량난)을 체제에 가장 위협적인 요인으로 보고, 국민봉기에 이르는 상황이 되면 북한이 붕괴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북한 전문가는 “북한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잘라말했다. 베이지의 정통한 대북소식통은 “북에서 인민봉기가 일어나 쿠데타가 성공하려면 최소 1주일을 버틸 수 있는 식량이 있어야 하는데, 고작 3∼4일 정도여서 인민이 주도하는 쿠데타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한반도 주변국들이 북한 붕괴를 방관하지도 원하지도 않기 때문에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말한다.

베이징 소식통은 “중국에게 북은 매우 중요한 존재이다. 북 체제가 위험하게 되면 중국이 먼저 나서 막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러시아도 북한 붕괴를 방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대다수 한반도 전문가들도 미국 역시 북한 붕괴로 인한 한반도 상황의 급변을 바라지 않는 것으로 분석한다. 일본 또한 북한 붕괴로 남북이 하나로 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고 본다.

따라서 북한이 내부 혼란으로 인해 체제가 붕괴될 가능성은 현실성 없는 비약이다.

◇ ‘북한 붕괴론’ 의 노림수… '보수' 대변, 북한 이해 걸림돌

차 석좌가 거론한 ‘북한 붕괴론’은 현실성 없는 허구라는 점 외에 또다시 제기된 배경이 주목된다. 

차 석좌가 ‘워싱턴포스트’에 글을 기고한 1월 16일(현지시간)은 북한이 제8차 당대회를 마친(1월 13일) 직후다. 또한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기 직전이다.

차 석좌의 ‘북한 붕괴론’이 사사하는 점은 바이든 행정부가 전대미문의 북한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는 일종의 ‘경고’다.

차 석좌는 자타가 인정하는 한반도 전문가라는 점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대북정책을 수립하는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그는 미국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아시아 담당국장을 지냈고, 대북 문제에 대해 부시 대통령에게 최측근에서 조언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이번 차 석좌의 ‘북한 붕괴론’은 개인적 글에 국한되지 않고, 그 뒤의 미국 보수세력을 대변한 것일 수도 있다. 

그는 한국계지만, 기본 성향은 미국 내의 네오콘과 같은 보수진영과 일맥상통하며, 북한의 의도에 회의적인 강경 성향의 인물이다. 2019년 6월 30일 트럼프가 방한 기간 중 판문점에서 김정은과 회동한 남북미정상회담에 대해서도 “리얼리티 쇼에 불과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한·미 보수 일각에서 꾸준히 제기해온 '북한 붕괴론'은 지난 30여년 동안 오랜 생명력을 유지해왔다. 북한의 현실에 대한 이해 부족과 왜곡된 시각은 북한에 대한 정책을 호도하고, 분단을 고착화시키는 빌미로 작용한다.  

차 석좌의 '북한 붕괴론'은 현실보다는 허구에 가깝고, 북한을 이해하는데 오히려 걸림돌이 된다.

민대호 선임기자 mdh50@korea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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