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얘기 없어” 거짓해명→녹취록 공개되자 "송구" 사과
野 "거취 정하라" 압박에 판사까지 "참담, 미국선 탄핵감"

(왼쪽부터)김명수 대법원장, 임성근 부산고법부장판사.© 뉴스1
(왼쪽부터)김명수 대법원장, 임성근 부산고법부장판사.© 뉴스1

국회가 사법농단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는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가결한 가운데, 법관 탄핵 발언 여부를 두고 임 부장판사와 진실공방을 벌였던 김명수 대법원장이 "기억이 불분명했다"며 사과했지만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김 대법원장은 "임 부장판사에게 탄핵 관련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고 부인한지 하루 만인 4일 "약 9개월 전의 불분명한 기억에 의존했다"며 임 부장판사에게 탄핵 발언을 한 적이 있다고 인정했다.

그간 판결에 대한 정치권의 공세에도 침묵을 지켰던 김 대법원장이 자신의 발언에 대해서는 적극 해명에 나섰지만 이마저 거짓말로 드러나면서 사법부의 신뢰가 추락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명수 '탄핵 발언' 보도에 부인부터 사과까지

전날(3일) 조선일보는 지난해 임 부장판사가 건강 악화를 이유로 사표를 내자 김 대법원장이 "내가 사표를 받으면 (임 부장판사가) 탄핵이 안 되지 않느냐"며 반려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임 부장판사는 지난해 건강 악화로 수술을 받은 직후 김 대법원장을 찾아 "몸이 아파 법관 일을 하기 어렵다"며 사표를 냈다. 그러자 김 대법원장이 "지금 국회에서 (사법 농단 연루) 판사 탄핵 논의가 진행 중"이라며 "사표를 받으면 탄핵이 안 되지 않느냐"고 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보도 내용에 대해 대법원은 "임 부장판사의 요청으로 지난해 5월 말 김 대법원장이 면담을 한 적은 있으나 탄핵 문제로 사표를 수리할 수 없다는 취지의 말을 한 사실은 없다"고 부인했다.

대법원은 "임 부장판사가 김 대법원장에게 정식으로 사표를 제출하지는 않았다"며 "대법원장은 임 부장판사에게 일단 치료에 전념하고 신상 문제는 향후 건강상태를 지켜본 후 생각해 보자는 취지로 말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기사 내용을 일절 확인해줄 수 없다"던 임 부장판사가 3일 오후 돌연 반박 입장을 내놓으면서 상황은 진실공방으로 번졌다.

임 부장판사 측 변호인인 법무법인 해인은 "임성근 부장판사가 담낭 절제, 신장 이상 등으로 건강이 좋지 않아 2020년 5월 22일 김명수 대법원장을 면담하기 직전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사표를 제출했고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에게도 보고했으며 대법원장과 면담하면서도 건강상의 이유로 사표를 제출했음을 보고했다"고 밝혔다.

이어 "당시 김 대법원장은 '임성근 부장판사가 사표를 제출하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대법원장은 여러 가지 정치적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사표를 수리하면 국회에서 탄핵논의를 할 수 없게 되어 비난을 받을 수 있다. 수리 여부는 대법원장이 알아서 하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임 부장판사 측 변호인은 "임 부장판사 본인은 오늘 보도에 관해 일절 확인하거나 보도조차 원하지 않는다고 했음에도 대법원에서 오늘 오후 사실과 다른 발표를 해 부득이 사실확인 차원에서 입장을 밝힌다"고 부연했다.

이 같은 주장에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았던 김 대법원장은, 임 부장판사가 4일 오전 김 대법원장과의 대화가 담긴 녹취록을 공개하자, 이날 오후 떠밀리듯 "송구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법원은 "대법원장은, 언론에 공개된 녹음자료를 토대로 기억을 되짚어 보니, 2020년 5월께 있었던 임 부장판사와의 면담 과정에서 '정기인사 시점이 아닌 중도에 사직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 하에 녹음자료에서와 같은 내용을 말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며 "아울러, 약 9개월 전의 불분명한 기억에 의존했던 기존 답변에서 이와 다르게 답변한 것에 대하여 송구하다는 뜻을 밝힌다"고 해명했다.

◇법원 내부 부글부글…야당은 사퇴 요구

일선 판사들은 참담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고법판사는 "미국에서였으면 대법원장 탄핵감"이라며 "대법원장 위신이 매우 떨어지는 일이 벌어졌다"고 했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정치인도 아니고, 한 나라에서 실체적 정의를 가장 추구해야 할 사람인 대법원장이 거짓말을 한 게 돼버렸다"고 꼬집었다.

부장판사 출신의 변호사도 "녹취록을 보면 대법원장이 정치권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이라며 "너무 실망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반면 임 부장판사를 비판하는 반응도 나왔다. 지방법원의 한 판사는 "임 부장판사가 무리수를 너무 심하게 뒀다"며 "대화를 녹취하고 공개한 것은 자기 혼자 죽지 않겠다는 것인데 매우 부적절하다. 어차피 임 부장판사는 형사 재판을 받는 피고인이기 때문에 사표를 받아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야당은 거취 공세에 나섰다. 배준영 국민의힘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내고 "내용이 사실이라면 김 대법원장은 이미 법원과 법관들의 리더로서의 자격을 상실했다"며 "김 대법원장은 법관으로서의 양심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지금 즉시 본인의 거취를 정해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사법부 독립성 차원에서 (탄핵 추진 여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해도해도 너무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며 "마치 임 판사 탄핵과 관련해 대응으로 하는 듯한 인상을 안 주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는 점을 밝혀둔다"며 김 대법원장 탄핵을 거론했다.

◇문대통령 만난 후 임성근에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는데"

여기에 김 대법원장이 임 부장판사와 면담 직전 이틀 연속으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 사실이 알려지며, 김 대법원장의 '정치적 중립'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김 대법원장은 지난해 5월21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국회의장 공관에서 열린 문희상 국회의장 초청 만찬에서 문 대통령 부부를 포함한 5부 요인 부부 기념식 자리에 참석했다. 김 대법원장은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중앙선관위원 임명수여식과 퇴임 대법관 훈장 수여식에도 참석했다.

22일 오후 임 부장판사를 만난 김 대법원장은 임 부장판사에게 "이제 사표 수리 제출 그러한 법률적인 것은 차치하고 나로서는 여러 영향이랄까 뭐 그걸 생각해야 하잖아"라며 "그중에는 정치적 상황도 살펴야 되고 지난번에도 얘기했지만 나는 임 부장이 사표내는 것이 난 좋다"라고 말했다.

이어 "내가 그것에 관해서는 많이 고민도 해야 하고 여러 가지 상황도 지켜봐야 되는데, 지금 상황을 잘 보고 더 툭 까놓고 이야기하면 지금 뭐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고 있는데 내가 사표 수리했다고 하면 국회에서 무슨 이야기를 듣겠냐 말이야"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임 부장 경우는 임기도 사실 얼마 안 남았고 1심에서도 무죄를 받았잖아"라며 "탄핵이라는 제도 있지. 나도 현실성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탄핵이 돼야 한다는 그런 생각을 갖고 있지 않은데 일단은 정치적인 그런 것은 또 상황은 다른 문제니까"라고 했다.

김 대법원장은 "탄핵이라는 얘기를 꺼내지도 못하게 오늘 그냥 수리해버리면 탄핵 얘기를 못 하잖아 그런 비난을 받는 것은 굉장히 적절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서울=뉴스1)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코리아리포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