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승계 위해 부정한 청탁"…준법감시위원회 할동 양형에 반영 안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리는 국정농단 관련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KR DB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리는 국정농단 관련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KR DB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돼 재판에 넘겨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열린 파기환송심에서 징역형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 송영승 강상욱 부장판사)는 이날 뇌물공여 등 혐의로 기소된 이 부회장에게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잔여 형기는 약 1년 6개월)하고,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에게 건넸다가 돌려받은 말 '라우싱' 몰수를 명령했다.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던 이 부회장은 2018년 2월 파기환송 전 항소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난 지 약 3년 만에 다시 서울구치소에 수감된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뇌물 요구에 편승해 적극적으로 뇌물을 제공했고, 묵시적이나마 승계 작업을 위해 대통령의 권한을 사용해달라는 취지의 부정한 청탁을 했다"고 밝혔다.

◇ 준법감시위원회 양형 반영 여부 핵심…재판부 "실효성 기준 충족 못해"

범죄사실에 관한 사실적, 법리적 판단은 대법원까지 3차례의 판결을 통해 이미 확정적으로 내려졌기 때문에, 파기환송심에서는 사실상 이 부회장 등에 대한 양형 수준 및 집행유예 선고 여부만이 문제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가 외부 인사로 구성해 설치한 준법감시위원회(이하 ‘준감위’)를 이 부회장 등에게 유리한 양형 사유로 반영되는지가 여부가 핵심 쟁점이었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과 같은 기업총수도 적용을 받게 되는 준법감시제도를 회사가 실효성 있게 운영한다면, 형법 제51조 제4호가 정한 '범행 후의 정황'으로써 횡령 등 범죄를 저지른 경영진에 대한 양형에도 참작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삼성의 준법감시위 활동에 대해 "실효성 기준을 충족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피고인과 삼성의 진정성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이 사건에서 양형 조건에 참작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재판부가 이러한 결론에 이르게 된 데에는 재판부, 특검, 변호인이 각각 추천한 전문심리위원 3인이 준감위에 대해 내린 평가결과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유죄 취지로 항소심 판결을 파기한 대법원 판결이 내려진 이후 갑자기 준감위 설치가 추진된 점, 변호인 측이 추천한 전문심리위원 이외에 특검과 재판부가 추천한 전문심리위원은 준감위의 실효성을 부정하거나 긍정적 판단을 유보한 점, 특히 준감위는 법령상 권한이나 책임이 부여된 법률상 기구가 아니라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준감위를 피고인들에게 유리한 양형으로 고려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재판부는 "현실적으로 대통령이 뇌물을 요구하는 경우 이를 거절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측면이 있는 점을 참작할 때 실형을 선고하더라도 양형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다소 부당한 측면이 있다"고 양형 배경을 설명했다.

이 부회장 측 변호인은 선고 직후 "이 사건의 본질은 전 대통령의 직권남용으로, 기업이 자유와 재산권을 침해당한 것"이라며 "그런 점을 고려할 때 재판부의 판단은 유감"이라고 밝혔다.

반면 징역 9년을 구형했던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뇌물 사건 유무죄 판단은 뇌물 수수자인 박근혜 전 대통령, 최서원의 유죄 확정과 함께 사실상 마무리됐다"고 했다. 양측은 판결 이유를 검토한 뒤 재상고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씨 측에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등을 도와달라는 청탁과 함께 회삿돈으로 뇌물 86억8000만원을 건넨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이는 2019년 10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파기환송 판결의 취지를 따른 것이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과 최씨에게 총 298억원의 뇌물을 건네고 213억원을 건네기로 약속했다고 보고 2017년 2월 구속기소 했다.

파기환송 전 1심은 전체 뇌물액 중 정씨 승마 지원과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 등 총 89억원을 뇌물액으로 인정해 징역 5년을 선고했다.

항소심은 1심에서 유죄로 인정한 액수 중 상당 부분을 무죄로 판단해 36억원만 뇌물액으로 인정했다. 형량도 대폭 낮아져 이 부회장은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이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항소심에서 무죄로 판단한 부분 가운데 50억원가량은 유죄로 인정된다며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김성지 기자 ksjok@korea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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