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기본' 수정없이 8차 전기본 수립 과정 적법 여부 감사 돌입
정치권 공방전 후끈…"에너지 전환 과정 절차 잘못, 갈등 계속"

2021년에도 '탈원전 정책' 관련 후폭풍은 계속된다. 감사원이 탈원전 기조가 본격화된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에기본)과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수립 과정의 적정성 여부에 대해 들여다보기로 하면서, 지난해 월성 1호기의 경제성 조작 의혹 감사에 이은 '탈원전 감사' 2라운드의 시작을 알렸다.

17일 감사원에 따르면 감사원은 지난 11일부터 22일까지 2주 일정으로 산업통상자원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대한 서면감사에 들어갔다.

2017년 12월에 발표된 제8차 전기본과 2019년 6월에 발표된 제3차 에기본의 수립 절차 과정의 정당성을 살펴보기 위한 취지다. 앞서 수립됐던 에너지 분야 최상위 계획인 제2차 에기본을 수정하지 않은 채 8차 전기본을 수립한 것이 문제가 없었는 지를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특히 8차 전기본을 기점으로 원전 감축 방안이 본격 논의 된 만큼, 감사원이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겨냥한 것이 아니냐는 견해도 나온다.

감사원은 지난해에도 월성1호기의 경제성 조작 여부에 대한 감사를 벌인 바 있다. 감사는 이례적으로 기간이 길어지면서 정치 쟁점화 돼 공방전이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산업부 공무원들이 관련 문건을 삭제하는 등의 '감사 방해' 행위가 적발되기도 했다.

지난해 감사 때와 비슷하게 이번에도 일찌감치 정치권에서 불이 붙은 모습이다. 감사원이 "이번 감사는 탈원전 정책에 대한 감사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음에도 또다시 '탈원전'을 둘러싼 공방전이다.

여당 측은 "감사원이 정부 에너지전환 정책에 대한 감사 입장을 밝힌 것은 월권적 발상"이라며 최재형 감사원장을 정면 비판했다. 반면 야당 측은 "삼권분립과 법치주의라는 민주주의의 기본을 몰각한 발언"이라며 "감사원장의 임기와 책무, 공무원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는 헌법과 법률에 의해 보장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행정 수립 절차에서의 정당성 여부에 대한 감사가 진행되는 것을 문제 삼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정동욱 중앙대 시스템공학부 교수는 "2004년 만들어진 에너지기본법은 정권이나 정치 세력이 바뀌더라도 장기적인 에너지 전략이 바뀌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며 "세부 내용의 적합성은 제쳐두고 그 과정에서도 문제 제기가 가능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도 "물론 에너지기본계획을 그대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고, 에기본 수정없이 전기본을 수립할 수도 있다"면서도 "그러나 이번처럼 에기본과 정반대로 가는 정책으로 바꾸는 것이라면 절차를 정확히 밟았어야 한다고 본다"고 밝혔다.

다만 에기본은 권고 사항으로 구속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정부가 에기본을 수정하지 않은 것 자체를 문제 삼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산업부 역시 "비구속적인 행정계획인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의 수정없이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수립한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더구나 탈원전 정책의 적합성을 따지는 감사는 아니기 때문에 지난해 월성1호기 감사 때와 마찬가지로, '소모전'만 벌인 채 이렇다 할 결과는 내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1년 넘게 진행됐던 월성 1호기 감사에서도 감사원은 "월성1호기 조기 폐쇄 과정에서 경제성이 불합리하게 낮게 평가됐다"고 하면서도 "조기 폐쇄 결정은 경제성 외의 다른 요인도 고려했기 때문에 타당성에 대한 종합적 판단은 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확실한 것은 이번 감사 역시 적지 않은 잡음을 계속해서 만들어 갈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이번 건뿐 아니라 지난해의 월성 원전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맥스터 증설 논란, 최근의 월성 원전 인근 삼중수소 유출 논란과 신한울 3·4호기 발전사업 연장 여부까지 원전과 관련된 이슈들이 모두 '뜨거운 감자'가 된 것만 봐도 충분히 짐작이 가능하다.

이는 원전 관련 이슈에 대한 높은 관심도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번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매끄럽게 진행하지 못한 데 따른 '후유증'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동욱 교수는 "애초에 정책을 수립할 때 국가적 컨센서스 없이 '밀어붙이기' 식으로 진행한 영향이 크다"면서 "당시 충분한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이슈가 나올 때마다 공방전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손양훈 교수도 "탈원전을 시행한 독일·이탈리아·스위스·대만 등 4개국을 보면 공론화-법제화-배상의 과정을 충실히 거쳤다"면서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 같은 과정을 제대로 밟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갈등구조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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