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부모 학대 노출 순간…공권력은 적극 개입 주저했다
3번 수사기회 번번이 놓쳐…입양·보호기관도 부실대응

입양 후 양부모에게 장기간 학대를 당해 숨진 16개월 영아 정인이와 관련한 분노의 여론이 거세다. 경찰의 부실한 초동 수사는 물론 입양기관의 안이한 관리 실태, 이를 예방할 수 있었던 관련 법안을 수차례 발의해 놓고 방치한 국회까지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잘못이라는 자성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서울남부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부장검사 이정우)가 정인이 양모를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양부는 방임과 방조 등으로 기소, 13일 첫 공판을 앞둔 가운데 '살인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 

◇"우리 가족의 새 식구, 행복해지자"는 거짓 약속

정인이는 지난해 1월16일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양부모 안모씨와 장모씨의 새 식구가 됐다. 입양 전 이름이던 정인은 이날을 기해 '유실'(遺失)됐다. 안씨 성을 따서 새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이다. '경자년 새 식구'로 불렸을 정인인 결국 새 이름으로 신축년 새해를 맞이하지 못하고 지난해 10월 숨을 거뒀다.

일각에선 주택담보 대출인 '디딤돌 대출'이나 서울 내 주택청약 가산점을 위한 수단으로 정인이를 소모한 게 아니냐는 비판까지 있었다. 이에 경찰은 "맘카페 등에서 의문을 많이 제기한 것으로 알지만 사실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입양 100일도 안돼 어린이집서 멍 발견…경찰은 내사종결

첫 번째 학대의 징후는 정인이가 입양된 지 100일가량 지났을 지난해 5월 확인됐다. 신고자는 정인양이 다니던 서울 강서구의 한 어린이집 교사였다. 정인양 몸 곳곳에서 멍 자국이 확인됐다. 교사는 의도적 폭행이라고 직감,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했다.

신고를 받은 서울강서아동보호전문기관은 경찰에 수사의뢰했다. 경찰에 출석한 양부모는 아이에게 안마를 하는 과정에서 생긴 멍이라고 진술했다. 이후엔 정인이 몸에 있는 몽고반점과 아토비성 피부염 등을 일부 오해한 것이라고도 해명했다.

혐의점을 찾지 못한 경찰은 이 사건을 내사종결 처리했다.

경찰 내사 처리규칙 제11조의2(내사의 종결 등)에 따르면 혐의가 없거나, 죄가 안 될 때, 사망 등으로 공소권 없음 등에 해당해 수사 개시 필요가 없는 경우 사건 수사 전 내사 단계에서 마무리 짓게 된다. 정인이의 속은 벌써 곪아가고 있었다.

◇두 번째 살릴 기회…이웃 관심에도 '구조 실패'

이후 정인이는 어린이집 결석이 잦아졌다. 7월에는 10번, 8월 20번 결석했다. 이 기간 양부모 친딸인 안모양은 같은 유치원에 정상적으로 등원했다. 신고의무가 있는 유치원 교사 등의 눈에서 사라진 사각지대에 갇힌 셈이다. 그 사각지대가 '양부모의 가정'이었다.

2차 신고는 동네 주민에 의해 이뤄졌다. 정인이를 차량에 수십분간 홀로 방치했다는 학대정황은, 그러나 황당한 변명으로 종결됐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을 거쳐 수사의뢰된 양부모는 경찰에서 정인이 방치를 '수면교육'이라고 설명했다. 아이가 혼자 잠을 자는 습관을 들이기 위한 교육 차원에서 차 안에 둔 것이라는 주장이다.

경찰은 이번에도 혐의점이 없다며 아이를 부모에게 돌려보냈다.

◇마지막 기회마저…안타까운 죽음 맞은 정인이

마지막 신고는 정인이가 사망하기 불과 20여일 전에 이뤄졌다. 이번엔 소아과 의사가 직접 신고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데려온 아이를 진단한 결과,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평가를 했다.

심각성을 느낀 소아과 의사는 경찰에 아동학대로 의심된다는 견해를 전달했다. 해당 의사는 "(부모와) 분리가 돼야 할 것"이라고 당시 경찰에 강력하게 말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몸 곳곳에 상처가 있고 영양상태도 좋지 못하다는 전문가 진단에도 경찰은 아동학대의 고의가 없다고 판단했다.

정인이는 이후 20일 뒤인 10월 13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 한 병원으로 실려왔다. 정인이는 심정지로 끝내 사망했다.

◇'보호의무' 어른들은 뭘 했나…1, 2차 경징계, 3차는?

정인이 사건은 경찰의 '구조 실패'로 귀결됐다. 의무나 관심으로 어린이집 교사나 소아과 의사, 아동보호전문기관 등이 수사기관에 정인이 구조를 요청했으나 당연한듯 연거푸 가정으로 정인이를 돌려보낸 것이다. 3번의 '구조기회'를 경찰이 날려버린 셈이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5일 낮 12시30분 기준, 하루만에 17만3000명 가량이 '양천경찰서장 및 담당경찰관 파면 요구'한 이유이기도 하다. 실명 인증이 필요한 양천서 홈페이지 '칭찬합시다' 게시판에도 이날(5일) 하루에만 500여개 비판 게시물이 올라왔다. 

서울경찰청은 3차 신고사건을 처리했던 서울 양천경찰서 소속 팀장 3명과 학대예방경찰관(APO) 2명에 대한 징계를 1월 중순께 의결할 예정이다. 이들은 지난달 2일 서울경찰청 징계위원회에 회부됐다.

1, 2차 아동학대 신고를 담당했던 경찰관에 대한 징계는 이미 마무리됐다. 지난달 2차 신고사건 담당자 2명에게는 경고, 1차 신고사건 담당자 3명에게는 주의 처분이, APO 감독책임으로 해당 여성청소년계장에게는 경고 및 인사조치, 총괄책임이 있는 전현직 여청과장에게는 주의 처분이 내려졌다.

3차 사건 처리 경찰관 징계 수위도, 국민청원에 20만명 동의를 앞둔 '파면' 등 중징계에 해당할지는 미지수다. 경찰은 앞서 동일 혹은 유사 사례 등을 감안해 해당 경찰관을 징계할 것으로 전해졌다.

◇"법규상 한계" 변명…국회서 폐기된 아동학대 방지법안 수두룩

이번 사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비판에 경찰은 대응 미흡을 일부 시인했다. 그러면서도 제도적 한계에 따른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고 호소했다. 입법을 통한 제도 개선이 있으면 '제3의 정인이' 등의 아동학대 사건을 막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경찰 관계자는 "학대 상황 이후 신고를 받을 경우 분리 조치하는 게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실제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살펴보면 제20대 국회 당시 발의된 아동학대범죄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안은 총 41건이나 된다. 대부분 개정안은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이 때문에 정치권과 정부에도 정인이를 비롯한 학대로 방치된 아동을 보호할 법안 미비가 제21대 국회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함께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입양기관 신고받고 방문…좀더 적극적 개입했더라면

아동보호전문기관과 입양기관(홀트아동복지회)의 부실대응 논란도 확산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앞서 홀트아동복지회는 정인이에 대한 학대 의심 신고를 받고 가정을 방문했으나 상황을 청취만 하는 등 소극적으로 대처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등 시민사회단체는 지난달 23일 기자회견을 열고 홀트아동복지회의 입양 절차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진상규명을 촉구한 상태다.

지난 2일 인스타그램에 '정인아 미안해' 챌린지를 동참한 홀트아동복지회에 대해서 인스타그램 등 SNS를 중심으로 '안티홀트' 운동이 펼쳐지는 등 비판은 아동보호와 관련한 기관으로 확산하고 있다.

오동윤 기자 ohdy@korea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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