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친필서한, 신년사론 최초…'인민' 강조
김일성·김정일 노동당 장악…김정은, 노동당 따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새해 친필서한.(노동신문 갈무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새해 친필서한.(노동신문 갈무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새해 첫날인 1일 '친필 서한'으로 첫 통치 행위를 선보였다. 정부는 이 서한이 사실상 신년사에 해당한다는 판단을 내놓기도 했다.

북한의 최고지도자는 매년 1월1일 '신년사'를 내놓는다. 전형적인 신년사의 양식은 장문의 연설 또는 '공동사설'이라는 방식의 긴 글의 형태를 띠었다.

김일성 주석은 과거 연설을 주로 택했고, 대중 연설을 피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공동사설 방식을 택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육성을 통한 신년사를 발표해 왔다.

그런데 올해 김정은 위원장은 처음으로 '친필서한' 만을 공개했다. 김 위원장이 전형적인 형식의 신년사를 생략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집권 첫 해인 2012년에는 노동신문·조선인민군·청년전위 등 당·군·청년보 3대 일간지 공동사설로, 지난해에는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 결정으로 대체한 바 있다.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친필 서한으로 인민들에게 새해 인사를 전한 것은 1995년 김정일 국방위원장 이후 26년 만이다. 당시 김정일 위원장은 김일성 주석의 사망(1994년 7월) 이후 처음 맞이한 새해 1월1일 주민들에게 친필서한을 보냈다.

당시 서한의 내용은 "피눈물 속에 1994년을 보내고 새해를 맞이합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전사, 위대한 수령님의 제자답게 내 나라, 내 조국을 더욱 부강하게 하기 위하여 우리 모두 한 마음, 한뜻으로 힘차게 일해 나갑시다. 1995. 1.1. 김정일"이었다.

그런데 김 국방위원장의 친필서한은 신년사로 인정하기에는 미심적은 부분이 있다. 당시 북한 매체들이 '공동사설'을 1월1일에 발표했다는 것과, 북한이 김정일 위원장의 친필서한 발표 사실을 1월19일이 돼서야 밝히면서, 정작 서한의 원본은 공개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당시 김정일 위원장의 친필서한은 주민을 상대로 하기보다는 내부적으로만 회람됐을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1995년 1월19일 북한 매체의 보도를 찾아보면 "'친필서한'에 제시된 과업을 철저히 관철하기 위한 결의모임이 중앙과 지방의 당, 정권·경제기관, 근로단체와 각지공장·기업소·협동농장 그리고 인민군과 인민경비대 부대들에서 각각 진행됐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반면 이번 김정은 위원장의 친필서한은 당 기관지 노동신문 1면에 대대적으로 배치했다. 김 위원장의 사진 왼쪽, 상단으로 배너가 배치된 것은 전형적인 북한의 신년사 보도 디자인으로, 이번 친필서한이 신년사를 대체했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김 위원장은 친필서한에서  "새해를 축하한다"로 글을 시작해 "새해를 맞으며 전체 인민에게 축원의 인사를 삼가 드린다. 온 나라 모든 가정의 소중한 행복이 더 활짝 꽃피기를 부디 바라며 사랑하는 인민들의 귀한 안녕을 경건히 축원합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나는 새해에도 우리 인민의 이상과 염원이 꽃필 새로운 시대를 앞당기기 위하여 힘차게 싸울 것"이라면서 "어려운 세월 속에서도 변함없이 우리 당을 믿고 언제나 지지해주신 마음들에 감사를 드린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위대한 인민을 받드는 충심 일편단심 변함 없을 것을 다시금 맹세하면서"라고 글을 맺었다.

북한 최고지도자의 신년사와 친필서한을 통해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의 3대로 이어지는 후계 통치를 볼 수 있는데 각각의 위상은 천양지차다. 김일성 주석은 당과 국가 그 자체라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 주석에는 근접하기 어렵지만 당을 이끄는 명실상부한 지도자로 '선군(先軍)정치' 시대를 열어갔다.

반면 김정은 위원장은 노동당을 완전히 장악하지는 못하고, 외형적으로 당의 대표에 올라있다고 볼 수 있다. 그가 당을 앞세우는 '선당(先黨)정치'를 내게우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계에서 국가보다 당(黨)이 우위에 있는 유이한 나라는 중국(공산당)과 북한(노동당)이다. 시진핑 주석은 공산당을 장악하고 있기에 중국을 지배하는 실제 스트롱맨이다. 반면 북한에서 가장 파워집단은 노동당으로 김정은 위원장도 당의 결정에 어긋난 행보를 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김일성·김정일 시대는 그들의 말이 곧 법일 수 있었지만, 김정은 위원장 시대는 노동당의 결정이 법이라 할 수 있다.

김일성 시대부터 북한 고위관계자들을 직접 상대해온 베이징의 대북소식통에 따르면 미국과 한국 정부가 북한을 이해하는데 가장 오판을 하고 실수를 하는 부분이 바로 노동당과 김 위원장의 역학관계이다. 김 위원장의 말을 최종 결정으로 판단하는 게 가장 큰 오류다.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오판이나 김 위원장의 말을 노동당을 통해 검증하지 않고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대북전략을 짜는 실수가 대표적이다.

김 위원장이 올해 육성 식년사를 하지 못하고 친필 서한으로 대체한 실질적 이유는 지난해 최악의 경제난과 식량난에 따른 주민들의 폭발 직전의 불만을 직접 마주하기 곤란한 측면이 크게 작용했다. 친필 서한 내용도 '인민'을 네 차례나 강조할 정도로 주민을 의식한 면이 뚜렷하게 드러나 있다.

이번 김 위원장의 친필 서한은 그와 노동당과의 관계를 간접적으로 추론할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대북정책이나 전략에 하나의 길잡이가 될 수도 있다.

민대호 선임기자 mdh50@korea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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