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산재사망률 OECD 1위…경영자 책임 강화 입법 필요
산안법은 현장관리자만 책임지는 ‘꼬리 자르기’ 한계

중대한 인명 피해를 주는 산업재해가 발생했을 경우 사업주에 대한 형사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2020년 연내 처리가 무산됐다.

이 법은 2018년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씨에서 비롯된 입법 청원이 2020년 8월 10만 명을 돌파하면서 논의돼 왔다.

우리나라는 매년 2400여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해 산재사망만인률이 0.6%로 OECD 국가 중 부동의 1위 임에도 산업재해 범죄에 대한 처벌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산업재해에 따른 책임자를 처벌하는 산업안전보건법이 있지만 범죄에 대해 처벌하지 않거나 가벼운 처벌에 그침으로써 ‘있으나 마나 산안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실제 정부 연구용역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년 동안 산안법을 위반한 피고인의 90.8%가 집행유예(33.5%)와 벌금형(57.3%)을 받은 것으로 집계됐으며, 징역·금고형을 받은 피고인은 단 2.9%에 그쳤다. 5년간 평균 벌금액도 자연인은 420만원, 법인은 448만원이었으며 산재사망 범죄에 대한 피고인의 평균 구금 기간은 채 1년도 안됐다.

그럼에도 입법 책임이 있는 여야 정치권은 이런저런 이유로 책임을 회피하거나 기업 입장을 두둔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국민의힘은 소관 상임위인 법사위가 시작하지도 못하게 방해를 하는가 하면, 기업이 경영을 제대로 할 수 없다거나 ‘이 법이 생기면 소상공인 죽는다’는 선동까지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말로만 법제정을 거론하면서 단일안도 내지 않고, 당론 채택도 하지 않아 시간 끌기에 똑같이 책임이 있다.

보수야당과 재계는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으로 산업재해를 막고, 피해보상도 충분하므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중복입법이고, 과잉입법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행 산안법이 법인을 법규 의무 준수 대상자로 하고 사업주의 경우 안전보건 규정을 위반할 경우에 한해서만 처벌하는 데 반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법인과 별도로 사업주에게도 법적 책임을 묻는다는 데서 가장 큰 차이가 있다.

이는 산안법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핵심적인 차이인 안전의무 이행 여부에 대한 ‘입증 책임’에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산안법은 사업주에게 중대재해 발생과 근로감독 지정 사항에 대한 확인 의무를 부과한다. 국민의힘과 재계는 이로 인해 산재 기업의 사업주가 처벌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주장하는 쪽은 전체 사업장 가운데 근로감독을 받는 사업장이 1%에 불과한 현실에서는 산안법이 사업주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안전관리자 등에게서 ‘꼬리 자르기’를 하는 등의 관행을 막기 힘들다고 지적한다. 

현재 규모가 작은 회사에서는 대표이사가 위험방지의무 위반에 따른 책임을 지금도 지고 있다. 반면에 50인 이상으로 규모가 큰 회사는 안전보건관리책임자를 의무적으로 두도록 정하고 있으므로 이들 현장관리자들이 공장이나 건설현장마다 대표이사를 대신해 책임을 진다. 큰 회사일수록 대표이사는 법망을 빠져나가는 역설이 작용하는 셈이다. 

그러나 권한과 책임이 형식적으로 위임되었다고 해서 대표이사가 아무것도 몰랐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현장에 필요한 설비를 투자하거나 인력을 보충하는 사항은 현장관리자가 아닌 대표이사가 알고 있어야 하고, 따라서 책임질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또 어떠한 재해 발생도 단 한 순간의 실수가 원인인 경우는 없다. 그러한 재해가 발생하기까지 위험을 무시하거나, 오히려 조장하는 의사결정들이 쌓이고 쌓여서 결과가 발생한다. 그 의사결정은 현장관리자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경영자들이 하는 것들이다. 혹은 현장에서 잘못된 의사결정들이 이뤄지고 있더라도 이를 법에 부합하게 바로잡는 것이 경영자의 책임이다. 이러한 구조적인 원인을 파헤쳐서 바로잡자는 것이 이 법의 취지이지 결과가 발생하면 덮어두고 경영자를 처벌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억울한 죽음의 재발을 막기 위해,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제대로 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상연 기자 lsy@korea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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