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뉴욕 총영사관 "주씨 진술서 사실 검증 안 했다…법적효과도 없어"
BBQ, 진술서 공증 직전까지 압박했나…제보자, 1년째 檢 출석 안 해

윤홍근 BBQ회장(왼쪽)과 박현종 bhc 회장© News1
윤홍근 BBQ회장(왼쪽)과 박현종 bhc 회장© News1

최근 BBQ와 bhc 사이에 벌어진 이른바 '치킨전쟁'은 제보자 주모씨가 출발점이다. 그는 2018년 KBS에 윤홍근 제너시스BBQ 회장의 '미국 유학비 횡령 의혹'을 제보했다. 이후 윤 회장과 BBQ는 대대적인 경찰 수사를 받아야 했고 국민적 공분의 대상이 됐다. 

하지만 1년 뒤 주씨는 'KBS에 한 제보는 모두 가짜였다'고 말을 바꾸면서 bhc의 사주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번에는 bhc가 허위제보의 공범으로 몰려 곤경에 처했다. 주씨가 입을 열 때마다 두 회사가 울고 웃은 셈이다.

특히 주씨가 작성한 9장 분량의 '번복진술서'에 '공증' 직인이 찍혀 있어 큰 파장을 낳았다. 많은 이들이 공증 직인으로 인해 진술서 내용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주씨의 번복진술서는 진실성을 담보하지 않은 '종잇장'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의 공증을 한국의 공증과 같은 개념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는 게 법조계의 지적이다. '유학비 횡령 의혹'의 진실을 쥐고 있는 키맨(key-man)이자, 베일에 싸여있는 '제보자 주모씨'의 행적은 의문투성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KBS 제보는 허위였다' 번복진술서…'팩트 체크'는 없었다

2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윤 회장을 둘러싼 '횡령 논란'을 뒤집었던 핵심 단서는 주씨가 쓴 '번복진술서'다. 그는 "KBS 보도 및 경찰제보, 국세청 제보에 대한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겠다"며 9장 분량의 진술서를 작성했고, 미국 공증 사무실과 주 뉴욕 대한민국 총영사관에서 각각 공증을 받았다.

하지만 뉴스1 취재 결과, 주씨가 2019년 10월18일(현지시각) 주 뉴욕 대한민국 총영사관에서 공증을 받았다는 진술서는 '사서증서 인증'으로 확인됐다.

외교부와 총영사관에 따르면 '사서증서'는 사문서의 서명날인을 본인이 했다는 '행위'를 증명하는 인증서다. 총영사관은 진술서에 날인한 서명이 주씨라는 점만 확인했을 뿐 그 내용의 진위를 확인하거나 관련 증거를 제출받는 절차를 전혀 거치지 않았다.

주 뉴욕 총영사관은 당시 상황에 대해 "당사자(주씨)가 영사관에서 처리한 업무는 '사서증서 인증'이었다"며 "영사는 사서증서 작성에 개입하지 않았고, 사서증서의 내용에 대해 진위 여부도 확인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어 "사서증서에는 확정판결과 같은 법적 효과가 없다"고 못 박았다.

외교부도 같은 입장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사서증서 인증에는 진술서 내용이 실체적 진실과 부합하는지 검토하거나, 관련 증거를 제출받아 확인하는 절차가 없다"며 "신분증과 수수료(법률행위 2.5달러, 사실행위 4달러)만 내면 누구나 발급받을 수 있다. 진술서 내용이 사실과 다르더라도 총영사관은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미국 공증 사무실에서 받은 공증도 진술서의 진실성을 담보한다고 보기 어렵다. 미국 공증 시스템 역시 사실관계 확인 절차를 전혀 밟지 않기 때문이다.

대한공증인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경력 10년 이상의 판사·검사·변호사 등 법률전문가에게만 공증인 자격을 부여한다. 한국 공증인이 발급한 '공정증서'는 공문서로서 민·형사소송에서 강력한 증거로 사용할 수 있고, 법원은 원칙적으로 공정증서의 내용과 다르게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

반면 미국은 공증의 권한과 효력이 훨씬 헐거운 편이다. 미국 시민권자나 영주권자라면 누구나 미국 공증인 자격을 딸 수 있다. 고도의 법률 지식이 필요 없기 때문에 공증의 법적 효력도 미미하다. 대한공증인협회 부협회장 출신인 이상석 변호사는 '미국의 공증제도와 등기제도 소개' 논문을 통해 "미국 공증인의 업무는 본인서명사실의 확인, 즉 공증인의 면전에서 증서에 서명한 사람이 진실로 그 사람 본인임에 틀림없다는 것을 나타내는 문언에 공증 인영을 찍어주는 정도에 한정돼 있다"고 설명한다.

미국법 전문가인 서상윤 변호사는 "미국 공증 사무실은 한국과 달리 신분증만 제출하면 공증 문서를 발급해준다"며 "공증 내용에 대한 사실관계는 일절 확인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공증) 내용 검토를 하지 않기 때문에 진위 여부에 대한 책임도 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다른 미국 변호사도 "미국에서는 신분증과 인지세만 내면 당사자 확인만 하고 곧바로 공증 도장을 찍어준다"며 "공증을 받기 위해 증인을 대동하거나 증거를 제출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이를 종합하면 주씨의 번복진술서에 찍혀 있는 공증은 주씨가 작성했다는 것만 확인해 주는 셈이다. 진술서의 내용이 진실인지 여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얘기인 셈이다. 물론 번복진술서가 사실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자체로 거짓이라고 단정하긴 어렵다. 하지만 주씨가 '이것이 사실이다'라고 주장하는 번복진술의 근거가 아무런 증명을 거치지 않은 '진술서 9장'이 전부라는 것 역시 고민이 필요한 지점이다.

제보자 주모씨가 2019년 10월18일(현지시각) 주 뉴욕 대한민국 총영사관에서 사서증서 인증을 받은 진술서. 총영사관은 이 문서에 대해 "영사의 개입 없이 작성한 문서이며, 내용에 대해 진위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다"고 답변했다.(MBC PD수첩 방송 갈무리)© 뉴스1
제보자 주모씨가 2019년 10월18일(현지시각) 주 뉴욕 대한민국 총영사관에서 사서증서 인증을 받은 진술서. 총영사관은 이 문서에 대해 "영사의 개입 없이 작성한 문서이며, 내용에 대해 진위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다"고 답변했다.(MBC PD수첩 방송 갈무리)© 뉴스1

◇경찰 "가짜 증거 믿고 기소했겠나…수사 문제 없었다"

번복진술서의 신뢰성이 떨어지는 이유는 또 있다. 오히려 현시점에서는 주씨가 윤 회장의 미국 유학비 횡령 의혹을 폭로했던 '최초 진술'이 더 신빙성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는 KBS에 최초 제보를 한 뒤 직접 경찰에 출석해 관련 증거를 제출하고, 2번에 걸쳐 진술했다. 경찰 수사에서 '1차 검증'을 거친 셈이다.

경찰에 따르면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2018년 11월 KBS의 보도가 나온 직후 내사에 착수, 다음달인 12월 BBQ 본사를 압수수색하는 등 6개월 동안 집중 수사를 벌였다.

윤 회장은 총 3차례 피의자 조사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고, 주씨도 참고인 자격으로 2차례 진술했다. 이 과정에서 주씨는 6년 분량의 미국 생활비 영수증과 생활보고서, 관련 계좌내역 일체를 경찰에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주씨가 제출한 서류와 두 사람의 진술조서,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장부 등을 대조한 뒤 윤 회장의 혐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결국 윤 회장은 지난해 6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업무상 횡령) 혐의로 검찰에 넘겨졌다.

하지만 1년4개월 뒤인 올해 10월, 주씨가 돌연 '제보 내용은 거짓이었으며, 경찰에 제출한 증거도 잘못됐다'고 입장을 바꾸자 여론이 급반전했다. 제보가 가짜인만큼 횡령 의혹도 조작됐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졌고 BBQ와 윤 회장은 한순간에 '선의의 피해자'가 됐다. 

주씨의 주장대로라면 2년간 대한민국 전체가 그의 혀에 놀아난 꼴이다. 경찰 역시 6개월간 수사를 하면서 그가 급조한 '가짜 증거'와 '허위 진술'을 고스란히 믿었다는 말이 된다. 심지어 경찰이 BBQ 본사에서 확보한 장부 내역이 주씨가 조작한 영수증과 일치했고, 윤 회장도 3차례나 주씨의 거짓말에 부합하는 진술을 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것이 가능한 일일까.

경찰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반응이다. 한 경찰 고위 관계자는 "참고인 진술이나 증거만으로 수사를 진행하는 경우는 없다"면서 "증거로 인정도 받지 못할 텐데 어떻게 그러겠나"고 반박했다. 비리 의혹을 폭로했던 주씨는 사건의 이해관계자였고, 당연히 그가 경찰에 제출한 증거와 진술은 증거로 쓰일 수 없다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이런 사건은 당사자의 진술과 경찰이 확보한 증거를 일일이 대조해서 서로 부합하는지 종합적으로 검토한 뒤 혐의가 입증될 경우 비로소 검찰에 송치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수사 담당자 역시 "당시 수사에서 문제될 것은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경찰이 압수수색 한 박스를 차량에 싣고 있다. 뉴스1
경찰이 압수수색 한 박스를 차량에 싣고 있다. 뉴스1

◇BBQ 번복진술서 작성 하루 전까지 압박…주씨 "너무 괴롭다"

주씨가 진술을 번복한 계기와 시점도 의혹을 증폭시킨다. 주씨는 2019년 10월18일(현지시각) 돌연 말을 바꿨다. KBS에 공익제보를 한 지 1년, 윤 회장이 검찰에 송치된 지 4개월 뒤다. 그 사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주씨는 지난해 10월4일 BBQ 측이 사기·횡령 등 혐의로 미국 매사추세츠주 법원에 제소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패소, BBQ 미국법인에 900만달러(약 100억원)를 배상하라는 확정판결을 받았다. 그리고 주씨는 14일 뒤 번복진술서를 썼다.

PD수첩 인터뷰에서 윤 회장은 주씨에게 진술을 번복하도록 압력을 가했느냐는 질문에 "회유한다거나, 매수한다던가 이것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부인했다. 주씨도 "BBQ에서 1원 한 장 받은 것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윤 회장과 주씨의 말을 그대로 믿기에는 수상한 점이 많다. bhc가 공개한 '녹취록'이 대표적이다. 주씨는 2019년 8월경 BBQ 측으로부터 다각도로 회유와 압박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윤 회장이 검찰이 송치된 지 2개월, 주씨가 미국 법원에서 패소하기 2개월 전이었다.

녹취록에 따르면 주씨는 bhc 관계자와 통화하면서 "그쪽(BBQ)에서 합의 제안이 왔다, 윤 회장이 형사소송 되어있는 것들을 좀 취하할 수 있도록 이렇게 좀 진술번복 이런 것들을 좀 해달라 이렇게 요청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주씨가 번복진술서의 공증을 받기 직전까지 심한 압력을 받았다는 정황도 있다. 그는 총영사관 공증을 받기 하루 전인 2019년 10월18일(현지시각 10월17일) bhc 관계자와의 통화에서 "나를 엄청나게 괴롭힌다"고 한탄했다.

그는 중간중간 말문이 막히는 듯 "(BBQ 측이) 주변 사람들 찾아다니면서 내 뒷조사하고 다니고, 탐정까지 고용해서 막, 막, 나 없을 때 우리 와이프까지 막 찾아서 막 만나고 한다"고 토로하면서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고 말했다. 그는 이튿날 주 뉴욕 총영사관을 찾아 번복진술서에 공증을 받았다.

BBQ측은 절대 주씨를 회유하기 위해 금전을 지급했거나, 손해배상금의 전부 혹은 일부를 탕감해주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배상금을 미끼로 합의를 보는 행위는 미국 기업법상 '배임'에 해당하고, 최악의 경우 미국 사업까지 접어야 하는데 그런 선택을 할 이유가 없다는 취지다.

하지만 법조계의 시각은 다르다. 미국은 법원 밖에서 소송당사자 간 합의가 자유롭게 이뤄지고, 법원의 확정 판결도 '사인 간 거래'로 조정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서상윤 변호사는 "미국은 변호사와 클라이언트(고객)의 비밀보장이 확실하고, 소송합의는 매우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며 "소송 당사자 중 한쪽이 패소했더라도 얼마든지 별도의 합의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 변호사는 "미국은 소송금액이 천문학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횡령, 사기 사건은 주로 민사소송에서 다툰다"며 "예를 들어 배상금 900만불 전부를 탕감해주는 계약을 판결 이후에 맺었다고 해도 법인에게 배임 혐의가 적용될 여지는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BBQ는 미국법인이 주씨로부터 손해배상금을 추징했는지, 추징 내역을 공개할 수 있는지에 관한 물음에 답변을 거부했다. 주씨도 손해배상금을 BBQ 측에 배상했는지를 묻는 말에 아무런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직접 검찰 출석하겠다"더니…주모씨, 1년째 오리무중

주씨가 윤 회장의 횡령 혐의를 풀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점도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그는 진술을 번복한 이유로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서'라고 답했지만, 정작 1년 넘게 검찰 조사에 응하지 않고 있다. 

주씨가 번복진술서를 썼더라도 윤 회장이 횡령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특히 주씨의 최초 제보와 번복진술이 모두 진실성을 의심받은 상황이다. 사건의 실체를 규명할 길은 사법부의 판단이 유일하다.

검찰에 따르면 수원지검 성남지청은 윤 회장의 미국 유학비 횡령 혐의에 대해 '참고인 중지' 결정을 내린 상태다. 참고인 중지란 참고인·고소인·고발인 또는 같은 사건 피의자의 소재가 불명확해 수사할 수 없으면 그 사유가 해소될 때까지 사건 수사를 중단하는 조치다.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은 사건의 핵심 당사자인 주모씨가 수사에 협조하지 않아 1년 넘게 수사를 진척시키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2년 전 윤 회장과 BBQ를 공격할 당시에는 직접 경찰에 증거까지 제출하며 의욕을 불태웠던 인물이 어째서 말을 바꾼 후에는 태도가 뜨뜻미지근하게 바뀐 것일까.

주씨의 행동은 번복진술서 내용과도 배치된다. 그는 진술서에 "요청이 있을 시에는 검찰에 직접 출석하여 사실대로 진술할 것"이라고 썼다. 무려 1년2개월 동안 진술서에서 한 약속을 이행하지 않은 것이다.

검찰은 주씨가 조사를 받아야 수사를 재개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검찰 관계자는 "주씨에게 출석 요구를 했는지 확인해줄 수 없다"면서도 "(주씨가) 입국하지 않고 있어서 참고인 중지 결정을 유지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어 "사건을 종결한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법조계는 주씨가 직접 등장해 수사가 재개되지 않는 한 진실을 규명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한다. 주씨의 1·2차 주장 외에도 △윤 회장이 횡령 혐의를 부인했다가 회사에 18억원을 변제했던 점 △'작은회장님, 아가씨 月지출 예상 내역서'를 두고 윤 회장은 "술 마시고 사인했다"고 말했지만, 주씨는 "내가 급조해서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등 엇갈리는 의혹이 산적해서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차라리 사건이 기소됐다면 공소장을 통해 전체 사건을 들여다볼 수 있겠지만, 아직 수사가 끝나지 않아 의혹을 해소할 길이 없다"며 "주씨는 피의자가 아닌 참고인 신분이어서 수배 영장을 발부할 수도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한편 뉴스1은 주씨의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연락을 시도하고 서면 질의서를 보냈지만, 주씨는 응답하지 않았다. BBQ도 공식적인 답변을 모두 거부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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