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성향 민변·참여연대도 `반헌법적 발상' 비판 가세
법무부, 한동훈 이어 N번방 사례 거론…`명분 만들기' 지적도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3일 국회에서 열린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 2차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3일 국회에서 열린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 2차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피의자가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숨길 경우 이행을 강제하고 불이행시 제재하는 법안을 지시하자 각계에서 `반헌법적 발상'이란 비판이 확산하고 있다.

국민의힘을 비롯한 야권은 물론 진보성향 단체들까지 '피의자 휴대전화 비밀번호 공개법안' 을 문제삼으며 비판에 가세하고 있다.

그러자 법무부는 휴대전화 비밀번호 공개 절차를 법원 명령으로 엄격히 제한하는 방안을 내놓으며 서둘러 진화에 나섰지만 논란은 지속될 전망이다.

정치권에선 여야를 막론하고 추 장관의 법안 추진을 비판하고 나섰다. 

정의당은 12일 추 장관이 피의자의 휴대전화 비밀번호 제출을 강제하는 법안 검토를 지시한 것이 "인권을 억압하는 행태"라며 강한 어조로 비판하고 나섰다.

장혜영 원내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내고 "추 장관은 국민 인권을 억압하는 잘못된 지시를 당장 철회하고 국민께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장 원내대변인은 "휴대전화 비밀번호 공개 강제와 불응시 불이익을 주겠다는 것은 형사법상 자백 강요 금지, 진술거부권, 자기방어권, 무죄 추정 원칙을 뒤흔드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장 원내대변인은 "인권변호사 출신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의 법무부 수장이 검찰총장과 신경전을 벌이느라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고 인권을 억압하는 행태를 보인다면 국민들이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도 13일 추 장관의 피의자 휴대전화 비밀번호 공개법 추진에 대해 공세를 퍼부었다. 김은혜 대변인은 논평에서 "헌법에 보장된 진술거부권, 형사소송법상 방어권을 무너뜨리는 반헌법적 발상을 법무부 장관이라는 사람이 선포했다"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헌법과 국민 위에 군림한 천상천하 유추독존(唯秋獨尊)"이라며 "무법 장관의 폭주를 눈감아주는 대통령은 도대체 어떤 나라를 꿈꾸는가"라고 물었다.

법조계와 진보성향 시민단체도 추 장관의 법안 추진을 강하게 비판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회장 박종우)는 13일 성명서를 내고 "국민의 인권을 최대한으로 보장해야할 의무가 있는 법무부장관이 수사편의적인 발상으로 국민의 인권 침해에 앞장서고 있는 점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헌법에서 천명하는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을 권리와 무죄추정의 원칙, 형사법상 자백강요금지 등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을 정면으로 침해하는 처사로 매우 부당하다"며 "법무부장관은 국민의 인권을 최대한으로 보장할 의무가 있다"고 덧붙였다.

진보 성향의 대표 단체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참여연대도 13일 휴대전화의 비밀번호 제출을 거부하는 피의자를 처벌하는 법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규탄하는 성명을 냈다.

민변은 ‘추 장관의 헌법상 진술거부권을 침해하는 법률 제정 검토 지시를 규탄하며 즉시 철회할 것을 요구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냈다.

민변은 "헌법은 누구나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을 원칙을 밝히고 있다”면서 “이 원칙하에 형사소송법도 피의자와 피고인의 진술거부권을 규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휴대전화 비밀번호는 당연히 진술 거부의 대상이 된다. 이를 밝히지 않는다고 해서 제재를 가한다면 헌법상 진술거부권과 피의자의 방어권을 정면으로 침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참여연대도 “‘사법방해죄’ 도입은 인권 침해 소지가 있고 검찰개혁에 역행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참여연대는 “과거 이명박 정부가 도입을 추진했다가 인권 침해 논란이 일어 폐기된 ‘사법방해죄’를 다시 도입하겠다는 것”이라며 “검찰에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제공하지 않는 것을 처벌하겠다는 법무부의 발상은 헌법 취지에 역행한다”고 지적했다.

또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며 검찰의 반인권적 수사 관행을 견제해야 할 법무부가 개별 사건을 거론하며 이러한 입법을 검토하겠다는 것은 본분을 망각한 것”이라며 “법무부는 반인권적이고 검찰개혁에 역행하는 제도 도입 검토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정치권과 법조계, 시민단체 등에서 잇단 비판이 나오자 법무부는 13일 오후 언론에 `디지털 증거 압수수색시 협력 의무 부과 법안 연구에 관한 알림'이란 문자메시지를 보내 해명에 나섰다.

법무부는 해당 법안을 검토하게 된 배경으로 한동훈 검사장 사례에 더해 `N번방' 사건을 추가로 언급했다. N번방 사건의 주범인 조주빈이 휴대전화 잠금 해제에 협조하지 않아 수사가 지연됐다는 언론 보도도 예로 들었다. 

그러면서 법무부는 ▲ 법원 명령 시에만 공개 의무 부과 ▲ 형사처벌 외 제재방식 다양화 ▲ 인터넷상 아동 음란물 범죄·사이버테러 등 일부 범죄 한정 등의 `조건'도 제시하며 기본권 침해를 최소화하겠다는 취지도 강조했다. 

법안에 대한 비판을 수용해 기본권 피해를 최소화하셌지만 법 자체를 철회하지는 않겠다는 게 법무부 입장이다. 이 같은 법무부의 `제한적 적용' 입장에도 법조계에서는 여전히 헌법에 위배된다는 비판적 시각이 우세하다.

정보인권 시민단체인 사단법인 `오픈넷'의 김가연 변호사는 "오늘날 휴대전화는 가장 중요한 디지털 증거이고 많은 정보를 포함하고 있는데 이를 공개하라는 건 프라이버시에 대한 근본적인 침해"라며 "제한적으로 적용한다 해도 헌법상의 원칙과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지검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입증 책임은 검찰에 있는 것인데 검찰이 더 열심히 수사하고 수사 기법을 발전시켜서 입증해야지, 피의자의 기본권까지 침해하면서 자백을 강요하는 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서는 전날 한동훈 검사장 사례를 특정하며 법안 검토를 지시했다가 `정권 수사에 대한 보복성 지시'라는 비판이 일자, 국민적 공분을 샀던 N번방 사건을 끼워 넣어 `명분 만들기'를 나선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법무부가 궁색한 해명을 내놨다는 비판이다.

김성지 기자 ksjok@korea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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