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 이유 내세웠던 산업부·한수원, 탈원전 정책에 흠집
'조기폐쇄 타당성' 판단 배제·법적 근거없어 재가동 힘들 듯

국내 최초 가압중수로형 원자력발전소로 2012년 11월 가동이 정지된 월성 1호기.
국내 최초 가압중수로형 원자력발전소로 2012년 11월 가동이 정지된 월성 1호기.

감사원은 20일 정부가 2018년 월성 1호기 조기폐쇄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원전을 계속 가동했을 때의 경제성을 불합리하게 저평가했다는 내용의 감사 결과를 내놨다.

조기폐쇄의 핵심 근거였던 경제성 평가 부분에서 흠결이 있다고 판단하면서도 정작 감사의 목적인 가동중단 결정의 타당성 여부에 대해선 아무런 판단을 내놓지 않아 정치적 갈등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1년 넘게 공방전이 이어지던 월성 1호기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 결과 한국수력원자력의 경제성 판단이 불합리하다는 것으로 나와 정부 입장에서는 타격이 불가피하게 됐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조기 폐쇄 자체에 대한 타당성을 판단하지 않아 정부의 '탈원전' 기조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이번 감사의 핵심으로 여겨지던 '경제성 평가'에 대해서는 '불합리'하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감사원은 "한수원 이사회가 즉시 가동중단 결정을 하는 데 유리한 내용으로 경제성 평가결과가 나오도록 평가과정에 관여했다"라며 "경제성 평가업무의 신뢰성을 저해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전 장관이 이를 알았거나 충분히 알 수 있었는데도 내버려뒀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백 전 장관의 재취업·포상 등을 위한 인사자료로 활용하도록 감사 자료를 당국에 통보하기로 했다. 

일단 이번 감사결과로 인해 산업부와 한수원은 적지않은 타격을 받게 됐다. 산업부의 경우 전직 장관의 비위행위가 지적된데다 국장급 간부, 직원에 대한 징계가 불가피해졌다.

한수원 역시 그간 월성1호기 폐쇄의 근거로 내세웠던 '경제성 저하'에 대한 부분이 불합리했다는 판단을 받으면서 월성1호기 폐쇄 결정의 근간이 흔들리게 됐다. 정재훈 한수원 사장은 이달 국정감사에서도 "월성1호기 폐쇄 결정 과정이 정당한 과정을 거쳤다"고 말해왔다.

다만 감사원은 한수원 이사들이 조기폐쇄를 의결한 데 따른 이익을 취득한 사실이 없어 업무상 배임죄에 해당하지는 않는다고 봤다. "법리적 책임이 있으면 지겠다"고 했던 정 사장으로서는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게 됐다.

이번 감사 결과로 인해 지난 3년반 동안 이어져 온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도 흠집이 생길 수 밖에 없게 됐다. 적지 않은 반대 여론에도 환경과 안정성 등을 강조하며 일관되게 '탈원전'과 '에너지전환'을 밀어붙였지만 그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고 절차가 정당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에너지업계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한치의 양보없이 밀어붙여왔던 탈원전 정책이 조금은 속도를 늦출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고 본다"면서 "탈원전 정책에 대한 찬반을 떠나 과정에서의 잘못된 판단, 정부 정책에 맞춘 오류와 왜곡 등이 있어선 안 된다는 중요한 지침이 되어야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감사결과가 정부의 입장에서는 큰 타격이 아니라는 관측도 있다. 월성1호기의 감사 결과 경제성 판단에 문제가 지적됐지만, 조기 폐쇄의 타당성에 대해서는 판단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감사원은 "조기폐쇄 결정의 타당성은 경제성 뿐 아니라 안전성, 지역수용성 등까지 고려해 결정했기 때문에 이번 감사 결과를 월성1호기 가동중단 결정의 타당성에 대한 종합적 판단으로 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감사 결과를 계기로 탈원전 정책에 많은 문제점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줬지만, 이를 통해 기존 정책을 전면 수정하는 등의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워보인다"면서 "오히려 조기폐쇄 결정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부 입장에서는 탈원전 정책 전체를 수정할 필요성을 못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감사원의 이같은 발표를 두고 여야는 상반된 반응을 내놨다. 더불어민주당 신영대 대변인은 구두논평에서 "야당이 주장해 온 배임 등의 문제는 지적되지 않았고 전체적으로 경제성 평가가 잘못됐다는 지적은 없었다"며 "소모적 논쟁을 멈춰야 한다"고 촉구했다.

반면 국민의힘 윤희석 대변인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한 실질적인 사망 선고"라며 "탈원전을 즉각 폐기하고 감사를 방해한 국기문란 행위에 대해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편 이번 감사 결과가 월성1호기의 재가동으로 이어지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기술적으로는 재가동이 가능하지만, 현행 원자력안전법 상 영구정지된 발전용 원자로의 재가동을 위한 근거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여당이 압도적 과반인 21대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개정될 가능성은 매우 낮은 상황이다.

만에 하나 법적 조항이 마련되더라도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안전성 심사를 다시 받아야하는데, 월성1호기의 수명이 2022년 11월까지라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이상연 기자 lsy@korea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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