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오 방한 취소, 10월 서프라이즈 기대감 낮아져
北 당 창건일 주목…정부 '종전선언' 추동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

한반도 안보지형이 불확실성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아베 신조 전 일본총리가 지난 9월 갑작스레 퇴임하며 스가 요시히데 내각이 들어선데 이어 이번엔 도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으며 미국 대선 판세가 크게 요동칠 전망이다. 한반도 주변의 이른바 '스트롱맨' 2명에 변수가 생긴 것이다. 

미중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만 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확진으로 방한을 취소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도쿄에서 열리는 반중 쿼드 4개국(미국·일본·호주·인도) 외무장관 회담은 강행하기로 했다. 트럼프 확진 상황에서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의 '중국 견제'의 고삐를 늦추지 않겠다는 각오다. 미중 사이에서 우리정부의 선택 시점이 빨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북미관계는 트럼프 확진으로 우리 정부가 추진하는 '종전선언'이나 북미정상간 깜짝 회담을 의미하는 '옥토버 서프라이즈'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남북관계 또한 지난 9월 해양수산부 공무원 피격사건 이후 남북간 접촉의 여지가 생겼다는 일부 기대감은 있지만, 경색국면을 벗어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 트럼프, 선거운동에 제약…건강상태도 대선 변수 될 듯

11월 3일(현지시간) 미국 대선이 예정된 가운데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트럼프 대통령은 예정된 TV 토론, 현장 유세 등 선거운동에 제약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대면 국정 업무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어 정치적 타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또 트럼프 행정부의 참모진 추가 확진의 가능성도 있다. 이번 미국 대선에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19 양성 판정은 불확실성의 변수로 떠오른 셈이다.

지금까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경시하는 듯한 발언을 이어간 트럼프 대통령은 정작 방역지침에 소홀하다 자신이 감염된 사례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19 확진은 지지율에 마이너스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고령에 비만으로 '고위험군'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진 트럼프 대통령의 건강의 위중 여부 등도 대선 결과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다만 기존 유권자들은 이미 누구에게 투표할지 확정했다면 코로나19 확진이 큰 변수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 10월 서프라이즈 기대감 낮아져…美 폼페이오 방한도 취소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19 확진으로 북미 정상간 깜짝 만남을 의미하는 '10월 서프라이즈'에 대한 기대감도 다소 낮아진 상황이다.

북미 정상은 지금까지 '톱다운' 방식의 대화를 주도해왔고, 이러한 흐름들이 한반도 상황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미 대선이 촉박한 시점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되면서 북측과의 직접적인 이벤트는 어려워 보인다.

특히 대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관계를 자신의 성과로 선전하길 원한다는 점에서 10월 서프라이즈 설에 힘이 실렸지만, 현 미국 입장에서는 코로나19 상황의 관리가 더 중요한 아젠다로 떠올랐다. 이 때문에 한반도에 대해 크게 관심을 쏟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당초 오는 7~8일로 예정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의 방한도 취소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입원하면서 일본 방문에 한정해 순방 일정을 단축하겠다는 입장을 미국 국무부에서 전해 온 것이다. 미국 대선 전 남북미 관계의 진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북한은 오는 10일 노동당 창건일 75주년을 앞두고 있다. 열병식 개최와 함께 군사 행보가 이어지는 게 아니냐는 추정이 나왔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확진 사건이 발생하면서 일각에서는 미국에 최대 위협 요인으로 꼽히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 발사 등은 자제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그간 트럼프 대통령과의 개인적인 친분을 강조하고 유지해 왔다는 점을 살펴볼때 '물난 집에 기름 끼얹기' 처럼 도발을 감행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 김 위원장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코로나19 확진 소식에 '위문전문'을 보내며 발빠르게 대응했다.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의 '톱다운' 방식에 기대감을 두고 관리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올해 북미·남북 대화의 정체 속에서도 정상 간 친분을 과시하며 '대화'의 불씨를 지핀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앞서 김 위원장은 지난 달 초 문재인 대통령과도 친서를 교환했는데, 이러한 북한의 '친서행보'는 북측의 대외 행보 재개를 앞둔 시점에서 나온 것으로 보여진다.

◇ 文 정부 '종전선언' 탄력 받을까…美 차기 행정부와 논의 대응 필요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월 23일 제75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한반도 종전선언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를 요청했다. 지난해 2월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진전 없는 북미 비핵화 협상과 지난 6월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로 냉랭해진 남북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카드로 종전선언을 띄우며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불씨를 살리겠다는 의도였다.

우리 정부는 종전선언을 의제로 김현정 청와대 국가안보실 제2차장,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미국으로 보내 트럼프 행정부와 긴밀하게 접촉하게 했다. 종전선언에 대한 미국의 지지와 이해를 확보하는 데 힘을 기울이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남측 공무원이 북한 해역에서 피격당하는 돌발 사건에 이어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19 확진 변수를 만나게 됐다. 종전선언 자체가 미국이 관여하고 동의해야만 가능한 사안이라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가 완치되기 전에 한반도 종전선언에 관심을 쏟을지는 미지수다. 

우리 정부가 추진하는 '종전선언'과 관련해 유엔사 해체 문제가 불거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정전상황을 관리하는 게 유엔사의 존립 목적이기 때문이다. 전시작전권 전환 이후 한국군의 지휘를 받게될 미군의 우회적인 지휘권 확보 루트로 유엔사가 거론되는 상황에서, 미측이 '종전선언'은 쉽게 수용할 지 여부도 여전히 변수라는 주장도 일부 제기된다.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보다 앞서가는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경우도 선택지에 두고, 우리 정부가 '종전선언'의 대응할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바이든 후보의 경우 전통적인 방식의 실무협상을 중시하는 스타일로 알려진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 행정부의 '톱다운 방식'과는 차이가 크다. 이 때문에 바이든 후보가 당선될 경우 현재까지 유지해 온 평화 프로세스의 방식에 수정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의견이다.

◇ 트럼프 확진에 미중 갈등 격화되나…국제 정세도 관심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19 양성 판정으로 미국이 중국 때리기에 더욱 힘을 쏟을 것이라는 관측이 미국과 중국 모두에서 나오고 있다.

미국 CNN방송은 3일 "(코로나19 감염 이후) 트럼프는 중국에 대해 더 강경한 노선을 취할 수도 있고 중국이 궁극적으로 책임이 있다는 말들을 더 쏟아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3일 홍콩매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사회과학원의 류웨이둥(劉衛東) 미중관계 연구원은 "확진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좋은 소식일 수도, 나쁜 소식일 수도 있다"면서 "어느 쪽이든 트럼프 대통령이 강력한 중국 때리기 전술을 쓰는 걸 정당화해줄 것"이라고 봤다.

이렇게 미중 갈등이 격화됨에 따라 우리 정부가 외교 줄타기를 하는 와중에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미중 협력을 동시에 끌어내기 어렵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아울러 국제정세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불확실한 상황으로 치닫게 되면 미국과 중국 등이 동맹국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밖에 없어 우리가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이 생각보다 빨리 올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백민일 기자 bmi21@korea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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