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현대 개관 50주년 '인물, 초상 그리고 사람 - 한국 근현대인물화' 전
103년 전 한국 최초 누드화 ‘해질녘’ 고국으로… 희귀 작품 다수 공개
191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시대상과 정신 담긴 54명 작품 71점 선보여

​ 김관호 '해질녘', 1916, 캔버스에 유채, 127.5 x 127.5 cm. 갤러리현대 제공​
​ 김관호 '해질녘', 1916, 캔버스에 유채, 127.5 x 127.5 cm. 갤러리현대 제공​

미술 역사에서 인물화는 시대에 따라, 동서양의 가치 기준에 따라 다른 양태로 존재하고 발전해왔다.

자연과 인간이라는 미술의 근원적 대상에서 상대적으로 서양은 인간에, 동양은 자연에 비중을 둔 양상을 보여왔다. 이는 서양에서 인물화가 시대별로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 반면, 동양에선 초상화가 주류를 이룬 배경이기도 하다.

인물화가 갖는 가장 큰 특징이자 의미는 ‘얼굴’에 담긴 시대상과 정신, 감정, 수많은 이야기다. 인물화는 당대를 살았던 인물은 물론 사회와 역사의 '자화상'이다.

그런 인물화를 통해 파란만장한 근현대사와 함께 한국 근현대미술사 진화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회가 열린다. 갤러리현대가 내년 개관 50주년을 앞두고 18일 개막하는 대규모 기획전 ‘인물, 초상 그리고 사람-한국 근현대인물화’다.

한국 근현대미술사 100년을 인물화로 풀어낸 이번 전시는 유홍준(명지대 석좌교수)·최열(서울대 강사)·목수현(서울대 강사)·조은정(고려대 초빙교수) 등 미술 전문가와 박명자 현대화랑 회장이 자문위원으로 참여해 시대정신과 독창적 화면을 구현한 화가 중 엄선한 54명의 작품 71점을 선보인다.

전시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 1부(본관)에서는 1910년부터 1950년대까지 제작된 근대미술 작품을 전시한다. 미술사적으로 귀중할 뿐 아니라 평소 만나기 어려운 희귀한 고전 명작들이다.

특히 일본 도쿄예술대 미술관이 소장한 근대미술 명작 6점이 주목된다. 한국인이 서양화 기법으로 그린 최초의 누드화인 김관호의 ‘해질녘’과 ‘자화상’, 최초의 서양화가인 고희동과 이종우·오지호·김용준의 ‘자화상’이다.

 ‘해질녘’은 1916년 도쿄미술학교를 수석졸업한 김관호의 졸업작품으로 그해 10월 ‘제10회 문부성미술전람회’에서 특선을 차지했다. 유일한 조선인의 그림이자 한국인이 그린 최초의 서양식 누드화로, 당시 우리 사회에 커다란 문화적 충격을 주었다.
 ‘해질녘’은 평양 대동강변 능라섬 기슭에서 막 목욕을 하고 머리를 손질하는 두 여인의 알몸 뒤태를 담아낸 작품으로 인물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다고 평가받는다.

하지만 한국 최초의 양화 누드화 걸작인 ‘해질녘’은 당대 사회에서는 노출이 허용될 수 없는 금기에 가까운 도상이어서 언론에 일체 공개되지 않았다.

이 작품은 도쿄미술학교 후신인 도쿄예술대학 자료실 수장고에 보존돼있다 1997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의 기획전 ‘한국근대미술:유화-근대를 보는 눈’에서 처음 실물이 공개됐다. 80여년이 흐른 후에야 처음 국내에 전시된 작품이 20여년만에 다시 서울 나들이에 나선 셈이다.

배운성 '가족도', 1930-35, 캔버스에 유채, 139 x 200.5 cm. 갤러리현대 제공
배운성 '가족도', 1930-35, 캔버스에 유채, 139 x 200.5 cm. 갤러리현대 제공

오지호의 ‘아내의 상’(1936)과 이인성의 ‘가을 어느 날’(1934)은 인체 탐구의 수단이자 인물의 형태와 의상, 배경 등에서 조선적 ‘향토색’을 표현한 대표작으로 꼽힌다. 독일에서 유학한 배운성의 ‘가족도’는 낯선 타국에서 동양에서 온 자신의 정체성을 가족사진과 같은 인물화에 담은 작품으로, 당대의 주거와 복식 등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어 등록문화재(제534호)로도 지정된 작품이다.

이쾌대의 해방공간기 명작인 ‘군상’ 연작 가운데 일반 전시에는 거의 나오지 않았던 ‘군상 Ⅲ’는 좌우 이데올로기 갈등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향해 나아가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쾌대 ‘군상 Ⅲ’, 1948, 캔버스에 유채. 갤러리현대 제공
이쾌대 ‘군상 Ⅲ’, 1948, 캔버스에 유채. 갤러리현대 제공

2부(신관)에서는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이 195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제작한 새로운 유형의 인물화를 선보인다.

우선 광복 이후 펼쳐진 6·25 전쟁 등 파란만장한 현대사에서 실존의 문제, 폐허를 치열하게 극복하는 인간 군상을 다룬 작품들이 전시된다. 이중섭의 ‘길 떠나는 가족’(1954)은 소달구지에 아내와 두 아들을 태우고 희망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작가의 감정이 읽혀진다.

이중섭 '길 떠나는 가족', 1954, 종이에 유채, 29.5 x 64.5 cm. 갤러리현대 제공
이중섭 '길 떠나는 가족', 1954, 종이에 유채, 29.5 x 64.5 cm. 갤러리현대 제공

박수근의 ‘길가에서’(1954)는 전쟁이 지난 자리에서 마주한 아기를 업은 단발머리 소녀의 모습이 작가 특유의 마티에르 기법과 함께 생을 향한 강렬한 의지와 희망을 보여준다. 김환기 '여인과 매화와 항아리', 박항섭 '가을', 김인승 '도기를 다루는 소녀',  김흥수 '길동무' 등에 등장하는 인물은 흰옷을 입고 도기를 든 모습을 통해 전통과 민족성을 상징한다.

장욱진의 자화상을 비롯해 천경자 ‘탱고가 흐르는 황혼’, 이숙자 ‘보리밭 누드’ 등의 인물은 내밀한 감정을 투사한 시대의 초상으로 내면의 자화상이라 할 수 있다.

천경자 '탱고가 흐르는 황혼', 1978, 종이에 채색, 46.5 x 42.5 cm. 갤러리현대 제공
천경자 '탱고가 흐르는 황혼', 1978, 종이에 채색, 46.5 x 42.5 cm. 갤러리현대 제공

1980년대 민주화 이후 민중미술 작가들은 불의와 억압에 저항하는 강한 인물상이 두드러진다. 판화 작가로 유명한 오윤의 보기 드문 유화 작품 `애비`(1981)는 80년대 초 민중예술운동을 함께 했던 동료 춤꾼 이애주씨의 얼굴을 옮겼다. 이밖에 임옥상 '보리밭', 황재형 '광부', 강요배의 `흙가슴`, 신학철의 ‘지게꾼’은 격변의 시대를 살아간 한국인의 희로애락을 생생히 드러낸다.

전시는 내년 3월 1일까지 이어지며, 관람료는 일반 5000원, 학생 3000원이다. 문의 02-2287-3500

박소연 기자 psy@korea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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